중국의 수출 규제로 우리나라에서 디젤차에 넣는 요소수 품귀현상이 일어났었다. 어떤 업자들은 이 기회에 돈 좀 벌어보자고 요소수를 창고에 잔뜩 쌓아놓고 더 가격이 오를 때를 기다렸다. 반면 마지막 남아있는 수천 리터의 요소수를 무료로 나누어준 주유소 사장도 있었다. 삭막한 세상이지만 알고 보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천인공노할 악인들도 있지만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사람도 있다.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가? 혹시 천국에는 못 갈지 몰라도 지옥에 갈 죄인은 아니지 않은가?”하는 의문을 가진다. 로마서 2장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선언에 반발하는 이들을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너도 사실은 만만치 않다”고 한다. “(롬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오십보 소 백보’(五十步 笑 百步). 전쟁 때 오십보 도망간 사람이 백보 도망간 사람을 비웃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인간들끼리의 기준으로 상대적은 선은 있을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 하며 비판하지만 그 판단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해 보아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거액의 기부를 했다는 보도를 보고, “자기 자랑하려고 쇼한다”고 비판한다. 사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냉철한 비판을 하는 사람은 과연 남몰래 선행을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일까? 남을 비판한다고 해서, 선과 악을 구분하는 냉철한 판단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는 실력을 갖추었다는 보장이 될 수는 없다.
요즘 청년층에서 공정함에 대한 분노가 있다. 비정규직과 관련한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부터 시작해서, ‘아빠찬스’ ‘엄마찬스’ 등 공정하지 못한 경쟁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흥분하는 청년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찬스가 있을 때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깨끗하게 거절할지는 의문이다.
남보다 선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기 죄에 대해서 매우 둔감하기 쉽다. 똑같은 악을 범해도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하다.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그리고 나름 인격적인 수양이 더 된 사람일수록 그 죄는 아주 은밀하고 치밀하다. 하나님의 법을 안중에 두지 않고 짓밟는 사람이든, 아니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착하게 산다고 하는 사람이든 누구든 하나님이 정하신 법에서 벗어나 죄인의 삶을 사는 것은 마찬가지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