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택민은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 그리고 권력의 가장 핵심인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으면서 명실상부한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은 등소평과 공산당 원로들에게서 부여 받은 것으로 초기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가 권력을 잡고 처음 개최된 1992년 10월에 개최된 14차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는 등소평이 남순강화에서 발표한 내용들을 토대로 개혁과 개방의 폭과 속도를 넓히는 정책을 결정하였다. 지금까지 구체화 되지 않았던 자본주의의 시장 경제를 중국의 체제 안으로 가져오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조금은 긴 이름의 정책은 지금까지의 중국의 체제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틀을 제공하였다. 이 정책이 선포되기 이전에는 중국은 여전히 공유제를 기초로 하는 경제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틀안에서는 생산재 소유구조를 보다 다양화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했다. 

이제 중국에서는 시장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개인소유, 민간기업, 외국자본과의 합병 등도 사회주의 소유제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개념을 도입한 정책들은 중국 경제에서의 참여자를 국유경제, 집단소유제 뿐만 아니라 개인경제, 민간경제, 외자 경제등의 발전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주식회사와 같은 현대기업제도가 정착될 수 있는 토대를 법적으로 제공하였다. 중국은 이제 국유기업을 주식회사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수용했고 민간기업의 시장 진입도 허가하였다. 이를 통해 소유권과 경영권을 분리하였고 동시에 국유기업이 정부의 직접적인 간섭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힘을 가지고 책임을 지는 기업으로 변화될 수 있었다. 

동시에 시장의 형태도 소비재와 생산재 시장을 확충하였고 금융, 노동, 기술, 부동산, 정보시장 등을 육성하였다. 이로 인해 중국에 주식 시장이 본격화되었고 일반인들도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었다. 

정부와 시장간의 틀도 변화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정부가 직접 경제를 통제하고 계획관리하였으나 사회주의 시장경제하에서는 금융, 재정제도의 개혁, 산업 정책 등 보다 거시적인 영역에서만 정부가 관리하고 나머지 부분은 시장의 자율에 의해 작동하도록 하였다. 

강택민은 등소평의 개혁과 개방을 뒷받침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선포한 뒤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담는 정책을 시도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사상을 ‘삼개대표론’이라고 한다. 2000년 2월 강택민은 광동성을 시찰 한 후 자신의 사상을 발표하였다. 그는 중국의 선진생산력의 발전과 중국의 많은 국민들의 근본적인 이익,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그의 삼개대표론은 첫 번째는 중국 공산당은 중국의 선진 사회생산력의 발전 요구를 대표한다. 둘째는 중국 공산당은 선진 문화의 전진 방향을 대표한다. 셋째는 중국 공산당은 중국 대부분의 인민의 근본적인 이익을 대표한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택민의 이 이론은 모호한 부분이 있고 보다 추상적인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이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구하더라도 여전히 그 중심에는 공산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등소평은 일찍이 강택민에게 권력을 넘겨주었지만 그의 권력이 비대해질 것을 염려하여 그 다음의 지도자로 호금도를 점찍어 두었다. 한편 강택민은 자신이 최고 지도자로 임명되자 그가 상하이에서 일할 때 같이 했던 사람들을 모아 자신의 세력으로 삼았다. 이들을 중앙으로 불러들여 강택민을 중심으로 하는 ‘상하이방’을 구축했다. 

중국에는 강택민 시기를 지나면서 혁명원로의 후손들인 ‘태자당’, 그리고 호금도의 ‘공산주의 청년단’ 그리고 강택민이 만들어 놓은 ‘상하이방’이 형성되었다. 이후 강택민이 호금도에게 권력을 내어 준 후 상하이방은 점차 약화되었고 시진핑의 태자당이 장악하면서 상하이방은 그 존재감을 거의 상실했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