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곳곳이 온통 울긋불긋 단풍을 입었다. 어디 멀리 나가지 않아도 아파트 주변만 둘러보아도 가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렇게 짙 푸르렀던 잎들이 어느새 빨강과 주황과 노랑 등으로 색깔을 바꾸고 햇빛에 반사되어 장관을 이룬다. 운전하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주변 풍광이 모두 아름답다. 주일 오후 잠깐이라도 가족들과 가을 나들이를 나서려했다. “아산의 은행나무 길을 가볼까, 오산 물향기수목원? 아니면 안성의 미리내성지? 그것도 아니면 가까운 부락산이나 소풍정원에?...” 하다가 결국은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가까운 곳에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자연이 있음이 감사하다. 더 나아가 우주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이나 자연의 신비한 생명현상을 보면서 기독교 신자인 나로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과 함께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를 경탄하게 된다. 마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거나 감상하면서 그것을 제작한 이에 대하여 경외감을 갖듯이 말이다. 

18-19세기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는 그의 시 <순수의 징조>(Auguries of Innocence)에서,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그대의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을 붙잡으라”고 노래했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 꽃에서 천국을 볼 수 있을까? 내 작은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포착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이성의 놀라운 통찰력은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포착하게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천지 만물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거룩한 신적 성품이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핑계할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지식이다(로마서 1:19-20). 인간에게는 우주 만물에 새겨진 하나님의 흔적을 알아차릴 만큼의 탁월한 지적 능력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인간의 놀라운 통찰력은 죄의 영향으로 망가지고 왜곡되었다. 그래서 인간 이성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흔적도 제대로 읽지 못하게 되었다. 인간의 지성에 큰 왜곡이 생기자 그의 감성과 의지에도 변질을 가져왔고, 세상에 수많은 불의함과 죄악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로마서 1:21-24). 인간의 이성은 어떤 영역에서는 여전히 찬란한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인간 깊숙이에 자리를 잡은 죄악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성경은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일하시면 새롭게 변화된 이성으로 우주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성령은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로 알게 하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포착할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우주의 생명현상만큼이나 신비롭고 놀라운 능력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새롭게 되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거듭난’ 사람이라고 하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까지 부른다(고린도전서 5:17).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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