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르-하지(Helena Norberg-Hodge)는 <오래된 미래>라는 책에서 ‘세계화’ 혹은 ‘서구 문명화’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도시인 인도의 라다크를 예로 든다. 라다크는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환경에서도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였다. 

그런데 서구식 개발이 시작되면서 환경파괴와 사회적 병폐들이 생겼다. 저자는 우리의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희망은 개발 이전의 라다크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행복한 미래의 세상의 해답을 전통적 과거에서 찾는다. “진정한 미래는 오랜 옛 지혜 속에 있다”는 격언을 일깨운다. 

그는 무분별한 개발방식이 아니라 옛 사람들의 전통과 지혜를 따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함을 역설한다. 그런데 저자가 전통과 조상의 지혜, 옛것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는 부분이 있지만, 자신이 속한 서구사회에 비판적이면서 동양문화에 대한 신비감과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성경에는 이와는 다른 아주 ‘오래된 미래’가 있다. 노르베르-하지의 ‘오래된 미래’가 희망이 과거 전통에 있음을 역설한 것이라면, 성경의 ‘오래된 미래’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계획에 관한 것이다.

미래는 우연하게 이루어져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계획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찬양인 “축복송”에는,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라는 가사가 있다. 지금의 믿음의 교제가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해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 중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었던 소쩍새”는 국화꽃의 오래된 미래인 것처럼 말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태초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신 아주 오래된 미래였다. 그 계획이 긴 인류의 역사를 통해 펼쳐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과 하늘에 오르심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언젠가 계획하신 대로 종말의 날이 이를 것이다. 그 모든 계획이 하나님 안에 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간은 그저 하나님의 계획하신 오래된 미래를 마음에 새기며 살 것이다. 

예수님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고 하신다(마 6:34).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확보하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일은 무엇인가? 우리에겐 아직 오지 않는 미래다. 아주 안 올지도 모르는 미래다. 그 미래는 오직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아주 오래된 미래지만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신다. 우리는 그저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간다. 오래된 미래로서, 선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으면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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