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가을에 들어섰지만, 가로수의 은행잎은 아직은 짙은 노란 물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은행 열매는 벌써 노릇노릇 익어 더러는 인도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흉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악취를 풍기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새벽이면 사람들이 장대를 들고 나타나 채 영글지도 않은 은행을 털어서 쓸어 담아 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아마도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중금속 물질에 오염되었다는 소문에서일까? 아니면 무단 채취로 인한 처벌이 두려워서일까?
은행 열매의 겉 부분을 싸고 있는 노란 과피는 악취와 독성이 있어서 먹을 수 없고 우리가 먹는 부분은 과피 가운데에 씨에 해당하는 딱딱하고 흰 껍질 속에 있는 부분인데, 열에 익히면 연두색의 연한 육질로 변하여 존득존득해서 씹는 맛과 담백한 맛이 어울려 얼마든지 먹어지는 묘미를 가졌다. 게다가 은행은 진해 강장의 보약이 되기도 하고 야맹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은행잎에는 혈액순환제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이 성분을 추출하여 혈액순환의 효능이 있는 의약품을 생산하기도 하고 뿌리 또한 허약을 보하는 약제로도 쓴다한다. 이토록 은행나무는 자체 각 기관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유익함을 주는 좋은 나무이다.
나무 자체로 보아도 지구상에 현재 생육하고 있는 나무 중에서는 지구의 생성 과정인 지질시대의 고생대 말기서부터 빙하기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은 최 장수 수목의 하나이다. 나무의 모양도 수려하여 품위도 있고 여름철에는 녹음을, 가을에는 아름다운 노란색 단풍과 맛있고 약효도 있는 열매를 제공하며 병충해도 없다. 그러기에 가로수로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진 나무이다. 다만 흠이 있다면 떨어지는 열매에서 악취가 난다는 것뿐이다.
이처럼 다 좋은데 단지 그 열매에서 나는 악취가 문제다. 원래 은행나무는 꽃이 피거나 열매가 열리기 전에는 암 수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산림과학원에서 DNA를 분석하여 은행나무의 암나무와 수나무를 조기에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냈다 한다. 앞으로 도시의 가로수용으로는 열매가 맺지 않는 수나무를 심고 외곽지역에는 열매가 맺는 암나무를 심어 수익성을 올릴 수도 있는 좋은 해결책이 나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