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가을에 들어섰지만, 가로수의 은행잎은 아직은 짙은 노란 물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은행 열매는 벌써 노릇노릇 익어 더러는 인도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흉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악취를 풍기고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새벽이면 사람들이 장대를 들고 나타나 채 영글지도 않은 은행을 털어서 쓸어 담아 가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아마도 자동차 매연으로 인한 중금속 물질에 오염되었다는 소문에서일까? 아니면 무단 채취로 인한 처벌이 두려워서일까? 

은행나무는 자웅이주(雌雄異株)라서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서 암나무에는 암꽃이 피고 수나무에서는 수꽃이 피어 자연 은행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리게 된다. 꽃은 5월에 피지만 작고 색깔도 엷은 녹색이라 잘 보이지도 않고 볼품이 없다 암나무 수나무가 따로 서 있어도 수꽃의 꽃가루가 암꽃에 수분되려면 바람에 날려서 운반되기 때문에 풍매화라 한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마주보고 있어야 열매가 맺는다고 했다. 이에 비유하여 사람도 마주 보고 대하여야 인연이 깊어진다고 한다. 또 예부터 은행나무는 천심을 하강시키는 신목으로 여겨 관가나 서당, 향교의 뜰이나 마을 어귀에 심었다. 그래서 지금도 시골에 가면 옛 면사무소 마당, 서당이 있던 자리 그리고 역사 오랜 초등학교 운동장엔 어김없이 오래된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은행 열매의 겉 부분을 싸고 있는 노란 과피는 악취와 독성이 있어서 먹을 수 없고 우리가 먹는 부분은 과피 가운데에 씨에 해당하는 딱딱하고 흰 껍질 속에 있는 부분인데, 열에 익히면 연두색의 연한 육질로 변하여 존득존득해서 씹는 맛과 담백한 맛이 어울려 얼마든지 먹어지는 묘미를 가졌다. 게다가 은행은 진해 강장의 보약이 되기도 하고 야맹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은행잎에는 혈액순환제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이 성분을 추출하여 혈액순환의 효능이 있는 의약품을 생산하기도 하고 뿌리 또한 허약을 보하는 약제로도 쓴다한다. 이토록 은행나무는 자체 각 기관이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유익함을 주는 좋은 나무이다.

나무 자체로 보아도 지구상에 현재 생육하고 있는 나무 중에서는 지구의 생성 과정인 지질시대의 고생대 말기서부터 빙하기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남은 최 장수 수목의 하나이다. 나무의 모양도 수려하여 품위도 있고 여름철에는 녹음을, 가을에는 아름다운 노란색 단풍과 맛있고 약효도 있는 열매를 제공하며 병충해도 없다. 그러기에 가로수로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을 가진 나무이다. 다만 흠이 있다면 떨어지는 열매에서 악취가 난다는 것뿐이다. 

이처럼 다 좋은데 단지 그 열매에서 나는 악취가 문제다. 원래 은행나무는 꽃이 피거나 열매가 열리기 전에는 암 수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런데 최근 산림과학원에서 DNA를 분석하여 은행나무의 암나무와 수나무를 조기에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냈다 한다. 앞으로 도시의 가로수용으로는 열매가 맺지 않는 수나무를 심고 외곽지역에는 열매가 맺는 암나무를 심어 수익성을 올릴 수도 있는 좋은 해결책이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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