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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의 지혜 456다시보는 중국 역사 (108) 모택동의 사망과 문혁의 종식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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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08  12:5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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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택동은 자신의 권력을 되찾기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켰고 이 기회를 노린 4인방과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임표가 앞장서 있었다. 특히 임표는 국방장관에서 부총리의 자리까지 올랐다. 

임표는 1925년에 공산당에 가입했고 장개석의 국민당이 만든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국민당군에서 빠져나와 모택동의 군대에 합류했고 전투에 능해 뛰어난 사령관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이 시작되었을 때 임표는 동북지역 인민해방군 총사령관이 되어 국민당을 격퇴하였고 이를 계기로 국민당과 공산당의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북경을 함락 시켰고 그 공로로 중화인민공화국 원수로까지 승진했다. 

1962년에는 인도와의 국경충돌에서 인도군을 몰아냈고 당시 중국을 이끌던 유소기에 반대하고 모택동의 편에 섰다. 모택동은 임표를 더욱 신임했고 그를 앞세워 문화대혁명을 이끌었다. 그 와중에 임표는 모택동의 공식적인 후계자로 부상했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고 했다. 점차 군부를 중심으로 임표의 세력이 확대되자 모택동은 다시 임표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이를 알아차린 임표는 모택동를 암살하려는 쿠데타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 정보를 입수한 모택동이 몸을 피하자 그는 쿠데타가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당시 공군이었던 아들과 가족들과 함께 소련으로 망명을 시도하였으나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하였다. 

임표가 죽자 노쇠한 모택동은 더욱 약해졌으며 이를 기회로 4인방, 특히 모택동의 부인이었던 강청이 권력을 장악하고 문화대혁명을 지속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1972년 이후 지병이 악화되었으며 병상에 있게 되었다. 4인방의 무자비한 탄압에 결국 중국인들이 1976년에 1차 천안문 사태를 일으켰다. 

시위대는 북경의 천안문 광장을 중심으로 관공서와 건물에 불을 지르고 교통도 마비 되었다. 이들은 강청과 4인방을 비판하였고 심지어는 모택동의 퇴진 구호도 등장했다. 강청등은 모택동을 앞세워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진압하려고 하였는데 군대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와중에 모택동은 병세가 악화되었고 1976년 9월 9일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였다. 모택동은 자신이 죽은 후 화장을 부탁했으나 시신이 방부처리가 된 채 북경의 ‘모택동 기념관’에 안치되어 있다. 지금도 북경에 가면 그의 방부된 시신을 관람할 수 있다. 

모택동이 사망하자 4인방의 권력은 급속도로 약화되었다. 공산당 원로들은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던 화국봉을 찾아가 4인방을 제거하기 위한 협의를 하였다. 10월 6일 회의를 핑계로 4인방을 부른 다음 전격적으로 체포했고 이들의 죄명은 당권을 빼앗고 반사회주의라자라는 것이었다. 

이날 오후 마지막 남은 강청도 체포되었는데 그의 몰락은 10년동안 중국을 혼란속에 빠뜨렸던 문화대혁명의 종식을 고하는 날이기도 했다. 이들은 감옥에 있으면서 재판을 받았다. 그중 강청과 장춘교는 사형, 왕홍문은 종신형, 요문원에게는 20년형이 선고 되었다. 

강청은 훗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나 1991년 스스로 자살을 택했다. 그리고 장춘교는 위암으로 죽었고 왕홍문과 요문원도 모두 병사하게 된다. 한줌도 안되는 권력에 중독되어 중국을 피의 도가니로 이끌었던 이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이후 1978년에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였는데 바로 등소평이다. 절치부심하던 등소평이 잘사는 중국을 만들겠다고 외치면서 개혁과 개방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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