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장마의 끝자락에서 9월을 맞는다. 가을장마가 여름장마보다 오히려 길게 느껴진다. 비의 양도 적지 않았다. 굵은 빗줄기였다가 어떤 때는 이슬비처럼 내리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가끔은 깨끗한 가을 하늘을 내놓는다. 인근 근린공원 야산에는 장마와 함께 온 거센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우수수 떨어져 있다.

시끄러운 매미들의 ‘맴맴’ 소리가 잦아든 곳에 ‘찌르르 찌르르’ 하는 가을 풀벌레 소리들이 가득 자리를 잡았다. 반소매는 긴소매로 바뀌어 간다. 여름장마가 여름 무더위의 예고편이라면 가을장마는 이제 가을채비를 하라는 재촉이다. 

문뜩 라디오 방송에서 들었음직한 ‘가을비 우산 속’이란 노래제목이 떠올랐다. 그 노래가 무엇을 말하든, 가을비 우산 속이 갖는 각자의 정서가 있다. 

고즈넉하고 차분해진 감정일 수도 있고, 때론 스산함이나 아니면 짙은 그리움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건 가을비 우산 속에서 잠시 상념에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생각에 잠기는 시간은 우리의 정서를 말랑하게 하고 회복시키는 기회이기도 하다. 왜 그런지 모르게 가을 상념은 다른 계절들에서보다 좀 더 깊이 있다. 

계절의 변화와 날씨의 맑음과 궂음이야 단지 기상현상에 불과하겠지만, 거기에 사람의 감정이 이입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계절의 바뀜에서 사람은 세월이 흘러감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마치 나무가 그런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서 나이테를 남기듯이 말이다.

너무 더워서 무엇을 하기 힘들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을 것 같은 가을이 온다. 아직 무더위가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고 한낮의 따가운 햇살도 남아 있을 테지만, 한 여름의 열대야와 싸워야 했던 그 때와는 분명 다르다. 9월에는 이른 추석도 있다. 이래저래 마음이 바빠진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가을날을 이렇게 노래했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드리워 주시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시어가 말해주듯 더위를 견뎌낸 곡식들은 가을 바람결에 막바지 무르익음을 위해 바빠지고, 그만큼 농부들의 손길도 바빠질 것이다. 

무엇인가를 잉태하고 영글어가는 계절을 맞으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뿌렸으며 가꾸고 살아가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한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잠 27:23). 내 인생에서 부지런히 살피고 마음을 두어야 할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가을비 우산 속에서 시작된 여러 가지 생각들은 책상 앞에 앉아서도 이어졌다. 언제 떠나갈지 알 수 없는 코로나 대 유행의 상황 속에서 알게 모르게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불편함과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살아갈 일상도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9월을 시작하면서 마음의 고삐를 다시 한번 더 죄어본다. 9월의 나날들이 풍성한 것들로 채워지기 바라면서.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