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라이트’(green light)란 말이 있다. 어떤 일에 대한 허가나 승인을 의미한다. 근래에는 남녀 간 주고받는 호감의 신호를 말하기도 한다. ‘레드 라이트’(red light)가 부정적인 이미지라면, 그린라이트는 상당히 긍정적 이미지다. 청신호가 켜졌다는 말은 “전망이 밝다, 원하던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적신호가 켜졌다는 말은 난관에 부닥쳤거나 원하던 방향으로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운전 중 계속 빨간 신호등이 들어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 짜증이 난다. 반면 계속 녹색불이어서 멈추지 않고 통과하게 되면 기분이 좋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범인을 체포하거나 여타의 목적으로 신호를 조작해서 차량을 유도하는 경우를 본다. 운전자는 그것도 모르고 녹색신호가 켜지는 대로 달리다보니 결국 막다른 도로에 갇히거나, 혹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기도 한다. 

구약성경 룻기 1장에 등장하는 나오미의 삶은 레드 라이트의 연속이었다. 가려고 했던 모든 길이 막혀버렸다. 남편을 의지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죽었다. 아들들을 의지해 보려했다. 그러나 두 아들마저 죽고 말았다. 결혼한 아들들이 자식이라도 낳았다면 손자들 때문에라도 소망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 자식 없이 죽고 말았다. 그는 인간적인 계산과 지혜로 자신만만했었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그것이 하나님의 레드 라이트였음을 깨닫는다. 

나오미는 연속된 고난 속에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레드 라이트를 명백히 보았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그린 라이트가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나오미는 자신에게 더 이상 어떤 희망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룻 1:11-13, 20-21). 그런데 텅 빈 채로 돌아온 나오미 앞에 펼쳐진 광경은 추수를 앞둔 곡식들의 황금 빛 물결이었다(룻 1:11). 그것은 그린 라이트의 전조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그의 몰락한 가문을 일으켜 세워줄 유력한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다(룻 2:1, 3:12-13). 성심을 다해 자신을 봉양해줄 효성스러운 며느리 룻도 곁에 있었다. 그런데 왜 나오미는 자신의 인생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인생이라고 했을까?  

불행한 일이 너무 한꺼번에 겹쳐 절망이 깊어지면 시야가 좁아진다. 자기에게 남아있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지 못한다. 깊은 절망이 있는 희망조차 갉아먹는다. 그러나 나오미를 향한 하나님의 레드 라이트는 그린 라이트로 인도하는 과정이었다. 깨어진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며 나아온 나오미에게 풍성한 은혜가 준비되어 있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한국선수단의 올림픽 현수막으로 다시한번 떠올려 보게 된 이순신장군의 말은, 내게 ‘없는 것’이 아닌 ‘있는 것’을 보게 한다. 혹 내 앞에 펼쳐진 수많은 레드 라이트 때문에 절망한 나머지 내 인생을 향한 그린 라이트는 못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절망하기에는 이르다. 나를 향한 그린 라이트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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