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야기는 구약성경 룻기 1:6-18이 배경이다. 유다 베들레헴에 살던 한 가정이 흉년을 피해 이방인이 사는 모압으로 이민을 갔다. 거기서 10년이 지나는 동안에 남편이 죽고, 모압 여인들과 결혼했던 두 아들도 죽고 말았다.

시어머니 나오미, 그리고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은 모두 과부가 되었다. 나오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하였다. 며느리들도 따라나섰다. 그런데 가던 도중 나오미는 길을 멈춘다. 그리고 두 며느리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며느리들은 아직도 살아갈 날이 창창한데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나오미는 자신을 따라간들 어떤 희망도 없다고 한다. 차라리 돌아가 재혼하여 새 출발하라고 한다. 자신을 따르는 한 번의 선택으로 평생을 고생길로 내몰지 말라는 것이다. 

나오미의 단호하고 간곡한 말에 오르바는 되돌아갔다. 하지만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룻이 오르바에 비해 효성이 더 지극해서였을까? 룻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 1:16). 룻은 시어머니가 믿는 그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섬기고 그 나라 백성 안에 살기를 바랐다. 룻의 이러한 신앙선택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의 신앙과도 견줄만하다(창 12:1). 

아무리 세상이 좋아도, 팔자를 고치고 평안한 삶이 약속되었다고 해도, 비록 삶이 고되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소망이 있다고 믿었다. 룻은 잠시 이 세상에서 얻는 순간의 행복보다 영원한 소망을 붙잡았다. 순교자 엘리엇은 말한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진정한 천국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다른 것에 목숨 걸지 않는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하늘의 가치가 아니라 세상의 가치로 사는 경우가 많다.  천국의 가치를 드러내기보다 세상의 가득한 욕망을 품은 채 산다. 세상 사람들이 신자에게서 어떤 차별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은 아닐까? 어깨너머로 들은 하나님 신앙을 붙들고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맡긴 이방 여인 룻은 오늘날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이 정말 소중한 것이냐고.

어느 때보다 신앙지식이 풍부한 시대를 살면서 과연 무엇을 붙들며 살고 있느냐고. 순간을 버리고 영원을 붙잡은 룻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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