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스페인의 합작 영화인 2010년 개봉작 “The Way”는 그리 잘 알려진 영화는 아니다. 나이 마흔에 들어선 아들이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섰다가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죽게 된다. 아버지는 급하게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사고 현장으로 간다. 이 영화는 그곳으로 간 아버지가 아들의 배낭을 메고, 화장한 아들의 유골과 함께 아들이 못다 한 순례의 여행을 마치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잘 나가는 안과 의사로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 톰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모험보다는 안정을, 이상보다는 현실을 추구하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가장 소중히 여기던 아들의 떠남은 그에게 생각지도 않았던 정지된 시간 속에서 멈춤과 돌아봄, 그리고 영적 사색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순례의 길에는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이유들을 가지고 온 사람들로 붐볐다. 주인공 톰이 우연히 순례길에 동행하게 된 사람들은 누구 하나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살을 빼기위해 순례길에 올랐다면서 쉬지 않고 먹어대는 네덜란드 남자, 남편의 폭력을 피해 그리고 담배를 끊기 위해 순례길에 올랐다면서 줄담배를 피워대는 캐나다 여자, 글이 잘 안 써진다며 순례길에 올랐다지만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끊임없이 떠벌리는 남자 작가. 

톰은 성가신 이들을 벗어나 빨리 순례길을 마치고 싶지만 그 길은 길기만 했다. 톰은 이렇게 동료 순례자들에게 냉담하게 여행을 시작하지만, 순례자들의 여정이 진행되는 동안 결국 그들에게 마음을 열어주게 된다. 주인공 톰은 결국 순례여행 길에서 참다운 자신과 마주하게 되고, 이후 또 다른 여행을 떠나는 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이 영화는 “The Way”라는 제목이 시사해 주듯이 길에서 길을 묻는 작품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한번 멈춰 서서 참다운 나를 만나 보라는 묵직한 울림을 준다. 

필자는 지리산 종주를 떠났던 몇 번의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무엇하러 그 몇날 며칠 힘들게 산에 오르내리느냐고 하는 말도 듣는다. 그러나 터벅터벅 걷는 길을 떠나 본 사람은 그 길은 자신을 돌아볼 좋은 기회임을 알게 된다. 우리의 사는 삶을 ‘인생길’이라고 일컫는다. 인생길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사람으로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인생길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맞게 가고는 있는 것인지를 때로 물어보아야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진정한 자신을 찾으러 여행을 가겠다는 아들의 말이 한심하고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랬던 주인공이 순례길에서 영혼의 자유함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처음 질문은 이것이었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한 번도 걸어 본적 없었던 초행길을 늘 걷고 있다. 길에서 길을 물어 본다. 어디서 어디로 가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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