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진은영의 ‘가족’이라는 시가 있다.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진은영,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사, 2003). 필자도 시쳇말로 ‘똥손’이어서 그런지 밖에서 사온 화분들이 오래 못 가고 다 죽는다. 전주 본가에 내려갈 때면 아버지께서 잘 가꾼 화분들을 가지고 가라고 주셔도 굳이 사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몇 번씩이나 가져와서 죽인 기억이 있기에. 

그런데 지금 시인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시 제목이 가족이지 않은가! 밖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동료요 친구요 이웃으로 알려지고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잘 배려한다. 그런데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있다. 이 짧은 시어 몇 구절이 우리의 마음을 꼭 찌르고 지나간다. 

늘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가족이기에 어차피 날 것 그대로의 나를 감출 수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게 가족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밖에서는 사회생활을 잘 하기 위해 싫든 좋든 예의를 차리고 자기를 좋게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집에까지 와서 그러고 싶지는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의도적이기 보다 별 생각 없이 본능처럼 행동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를 가장 지지해 주고 격려해주어야 할 가족 간에 오히려 상처를 주고받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가정 안에서의 폭력과 학대가 이제는 너무 빈번하게 대중 매체를 통해 알려진다.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들로 충격을 받는다. 그런 심한 경우는 아니라도 혹시 서로에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쌓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화가 필요해”라는 오래 전 코미디 프로그램 제목처럼 가족 간 깊은 대화가 필요할 때인지도 모른다. 

자녀들이 어릴 적에 가끔 “아빠가 왜 좋아?”라는 물으면 너무 당연하고 뻔한 대답, “아빠니까요”라는 말을 듣고서 가슴이 뭉클한 적이 있다. 아빠니까, 자식이니까, 부부니까 더 소중한 존재들이다. 가정의 달 5월도 이제 끝자락에 서있다. 5월에는 이벤트처럼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보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족은 5월 아닌 날에도 늘 우리 가까이에 있다.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더 중시되는 시대이다. 누구를 위한 희생보다는 자기실현을 더 추구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가족은 예나 지금이나 소중하다. 우리는 누구의 자식이고, 누구의 배우자이며, 누구의 부모이다. 가장 지혜로운 왕으로 알려진 솔로몬의 잠언서의 한 구절을 묵상해 본다.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들이었으며 내 어머니 보기에 유약한 외아들이었노라”(잠 4:3). 아픔도 슬픔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자. 그리고 그 관계의 소중함을 잘 지켜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일들을 실천해 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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