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가면서 장바구니에 넣어간 지갑이 사라졌다. 검은 장지갑에는 카드 두 장과 현금 십육 만원이 들어있었다. 혹시 두고 왔나 싶어 집에 가서 확인해도 보이지 않았다. 집안을 발칵 뒤집어도 나오지 않아 분실신고부터 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배고 함부로 물건을 사지 않는 나로서는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고, 아끼다가 똥이 된 격이다.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험이 다섯 번은 되는 듯하다. 오늘이 그날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침착하려해도 지갑 속 돈이 눈에 아른거려 생땀이 삐질삐질 났다. 잃어버린 지갑으로 인해 얼마 전 모임 자리에서의 친구 말이 생각난다. 친구는 언제나 베풀기를 좋아해서 돈을 내야 할 일이 생기면 먼저 계산을 하거나 선물을 사서 주기도 한다. 더치페이. 엔분의 일, 뿜빠이란 말이 각자 비용부담의 정석이 된 문화에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 하는 내게 “내가 돈이 많아도 쓰지 않는 돈은 내 돈이 아니야, 지금 쓰는 돈만이 내 돈이야.”라고 말하는 겸손하고 초연한 친구 모습을 잊지 못 한다.

그날 이후 타인의 삶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작지만 마음을 보태는 여유도 생겼다. 오늘 잃어버린 돈에 잠시 멘탈이 털린 것도 사실 내게는 큰 액수인 거금을 제대로 쓰지 못한 상실감에서 오는 아쉬움 때문이다.

<돈꽃>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 사이트에 ‘돈을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에 살지만 실은 돈에 먹혀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라고 소개되어 있다. 

유머러스한 효심의 마음인지 언젠가부터 부모님 생신을 축하하는 이벤트로 돈 꽃다발, 돈 케이크 인기가 많아지면서 액수와 아이디어도 기발해졌다. 돈이 꽂힌 마음의 선물을 보고 어찌 웃지 않으며, 행복해하지 않을 사람 있는지 손들어 보시라. 평생 고생하며 살아온 늙은 언니도 칠순 축하 돈 케이크 돈을 뽑으면서 히히 웃는 모습이다.

빗소리가 느긋해졌다. 느긋한 비의 장단을 들으니 잃은 게 진정 무엇인지 묻고 싶다. 목탁을 설명하던 스님의 모습을 기억하며 지혜의 형체와 닿는다. 

목탁 양쪽 구멍은 물고기의 눈이라고 한다.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고 잠을 자기 때문에 우리도 물고기처럼 지혜의 눈이 밝고, 슬기롭게 떠있으라는 말이다. 아, 잃어버린 허무함을 넘어 큰 것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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