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모퉁이를 돌다가 시멘트로 된 가드레일을 왕창 들이박았다. 창문을 내려 남은 커피물을 밖으로 버리려다가 순간 오른쪽 발에 힘을 주었던 것이다. 

“쾅!” 소리에 차를 보니 타이어와 하체가 밀려 운전대가 마구 흔들렸다. 한산한 좁은 농로라 다친 건 자동차뿐이었다. 사고 점에서 일터가 바로 앞이라 출근을 했지만 차를 운전함에 방심했던 나를 책망하게 되었다.

정비공장에 차를 맡기고 일주일을 걸어서 출퇴근한다. 소사동 긴 농로를 따라 걸으니 지금 오월이 시작이다. 농수로엔 물이 찰랑찰랑 넘쳐 논마다 물이 들어가고 어느새 벼를 심은 논도 있다. 개구리 소리 들리고 초록 둑에는 돌미나리가 새록새록 돋아나고 있었다.

아침 골목에 들어서니 붉은 양귀비가 무더기로 흩뿌려져 꽃들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은 감미롭다. 모란, 아이리스도 피어 그들에게 듬뿍 위로를 받는다. 

그 골목에는 아주 작은 집이 있는데 조각 나무로 지은 판자집이다. 이 집 주인이 손수 조각 나무를 얻어 하나하나 맞추어 지었나보다. 이 지상에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내가 보기엔 작품이다. 집 주위는 온통 라일락 숲이다. 보랏빛 라일락 숲속에 오두막집! 보기만 해도 마음이 좋다. 

걸어서 가는 길에는 시간과 공간에 맞게 이런 아름다운 길도 있다.  옛말에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지만 넘어지면 쉬어야 살 것 같다.  

오늘은 마침 휴무일이라 극장에 갔다. 그 시간 ‘미나리’ 상영관 관객은 나 혼자였다. 이런 일은 처음이지만, 코로나 위험 때문이다. 버터로 구운 오징어도 먹지 못하고 미나리를 보았다. 한국의 미나리 씨를 옮겨와 미국 아칸소에 심은 내용이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당신은 행복할 때 제일 예쁘더라” 라는 대사와 함께 심장이 아픈 막내 아들은 자기가 맞을 회초리를 가지러 밖으로 나갔다. 그 밤에 밖에서 가져온 회초리는 가늘고 긴 풀줄기였다. 어린 소년의 부들부들한 마음씨가 미나리씨가 아닐까! 

오랫동안 좋아하던 우리나라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오늘은 그나마 살 맛이 나는 하루다. 

나는 자동차보다도 뇌와 다리로 나를 운전함에 더욱 견고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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