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신문
기획·특집중국, 중국인의 지혜
중국, 중국인의 지혜 438다시보는 중국 역사 (90) 태평양 전쟁의 종식과 중국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4.14  11:37:1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태평양 전쟁은 크게 보면 2차 세계대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아시아 지역에서의 전쟁을 따로 부르는 명칭이다. 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히틀러가 1939년 9월 1일 폴란드의 서쪽 지역을 침략하면서 그 전쟁의 도화선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1937년 일본의 본격적인 중국 침략을 그 시작점으로 보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국가들은 연합국과 추축국으로 구분되는데 연합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과 중국 등이 있었고 추축국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이 그 중심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가장 큰 원인은 독일과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이유 조약을 맺었으나 그 조약이 너무 가혹하였고 세계적인 공황이 발생하자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군사력을 확대하여 전쟁을 준비하였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고 만주 지역을 강탈하자 서방 국가들이 일본을 제재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중국의 가장 상징적인 도시였던 북경을 점령하자 소련은 중국의 장개석과 중국과 소련의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군수품을 지원하였다. 일본은 소련의 영향력하에 있던 몽골을 공격하였으나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이름하에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의 길을 걷던 일본은 그 야욕을 멈추지 않고 그 세력을 태평양쪽으로 확대하였다. 

한편 유럽에서는 독일이 프랑스, 벨기에, 네델란드, 룩셈부르크를 침략하였고 프랑스는 자랑하던 마지노선이 손쉽게 함락당하고 독일에게 항복을 하였다. 독일은 전선을 확대하여 영국을 공격하였고 동시에 이집트도 침략하였다. 

그 와중에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은 삼국 동맹 조약을 체결하였고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한편 미국은 초기에는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영국과 중국에 대한 간접적 지원만 지속했다. 특히 일본에 대해서는 석유공급을 중단하여 일본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였다. 

일본은 미국이 전쟁에 소극적인 점을 간파하고 중앙 태평양에 이르는 방어선을 구축한 후 유럽이 아시아에서 지배하던 식민지들을 점령하여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려고 하였고 이를 위해 미국의 태평양 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진주만을 폭격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은 본격적으로 2차 세계대전의 유럽과 태평양 지역에 군대를 파견하여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전쟁 초기에는 일본이 우세하여 미국의 주요 기지였던 괌과 웨이크섬도 점령되었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도 일본의 손에 넘어갔고 호주의 북부 지역까지 공습을 감행했다. 

미국은 태평양 지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태평양 전쟁회의를 창설하여 여기에 중국, 영국, 호주, 네델렌드, 뉴질랜드, 캐나다의 대표가 참석하여 일본과의 전쟁을 본격화하였다. 일본은 미국의 기선을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미국의 항공모함을 격침시키기 위한 미드웨이 공격을 계획하였다. 일본은 자신의 4척의 항공모함을 동원하였으나 미국에게 전략이 노출되었다. 

결국 일본의 소류, 카가, 아카기와 히류의 4척의 항공모함은 모두 격침되었고 일본의 제해권이 상실되어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한편 중국에서도 일본군 12만명이 공격을 감행하였으나 중국군이 일본에 승리하였다. 이제 곳곳에서 연합국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일본은 점차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1943년 미국의 루스벨트와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개석이 모여 카이로 회담을 진행하면서 태평양 전쟁의 전략 방향을 결정하였다. 일본군은 1944년 50만명의 병력을 동원해 중국 전역에서 대규모 작전을 전개하였으나 중국군을 완전히 패배시키지 못했다. 

1945년 4월 독일의 히틀러는 자신의 벙커에서 자살하였고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무조건 항복을 하여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이 종식되었다. 일본의 세력이 물러난 뒤 중국에는 국민당과 공산당 두 개의 세력만이 남게 되었고 이들간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평안신문 선정‘ 2022 평택·안성 ’10대 뉴스
2
평택·안성, 강남 직행좌석버스 노선 신설된다!
3
2023년 알아두면 좋은 바뀌는 제도 Ⅰ
4
정장선 평택시장
5
지방정치를 좀먹는 정당정치
6
임인년(壬寅年), 한 해를 마무리하며
7
안성시, 여소야대 시의회와 첨예한 대립
8
계묘년(癸卯年), 높게 도약하는 한해가 되길
9
수원지검 평택지청·법무부청소년범죄예방위원회, ‘청소년 범죄예방 한마음 대회 및 예술 발표회’진행
10
평택항, “항만경쟁력 지켰다”
신문사소개윤리강령편집규약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평택시 비전5로 35, 501호(비전동) (주)평안신문  |  대표전화 : 031-692-5577  |  팩스 : 031-692-5579  |  대표메일 : panews@hanmail.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경기 다 00922  |  발행인 : 심순봉  |   청소년보호책임자 지정 : 이성관
Copyright © 2011 평안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p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