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서의 비릿한 냄새가 아닌 소독약 냄새가 났지만, 도시 속에서 이런 풍요로운 시냇가를 만난 것이 기뻤다. 몸살을 앓고나서 집에서 나오기를 겨우겨우 한 발짝 떼어 배다리 도서관으로 걸었다. 가까이서 물소리가 나길래 둘러보니 시냇물 흐르는 소리다. 

자연스레 징검다리가 놓여있고 물레방아도 돌아간다. 돌 틈에 한 포기 아이리스꽃이 피었고 노니는 물고기도 보았다. 세무서와 도서관 사이로 이어지는 작은 동산을 가로질러 긴 시냇가가 생겼다. 인공시냇물이지만 돌고도는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기에 충분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코로나로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가벼운 가방과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내가 정한 도서목록 몇 권을 찾아 책을 빌리고 아래층에 내려와 카페에 들렸다. 커피와 블루베리 머핀을 먹으며 내다보는 창밖 풍경은 새봄이었다.

배다리저수지가 바로 보인다. 노란 원피스를 입고 엄마 손을 잡아 팔짝팔짝 뛰는 여자아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청년이며, 저수지 주변을 자연스럽지 않은 운동 걸음으로 뱅글뱅글 도는 중년 아저씨도 이렇게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나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그 틈에서 조용히 단련된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시냇가 옆 돌에 앉아 봄볕에 얼굴을 내놓고 내가 할 일을 적는다. 빚을 갚고 가계부와 일기를 쓴다. 쓰면서 가끔은 나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고 생기있는 봄의 시절로 돌려놓는다. 먼 봄에 보았던 영화의 제목처럼. 

누군가는 강가에 앉으려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벼락을 맞고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물에서 수영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만들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누군가는 그냥 엄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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