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신문
기획·특집중국, 중국인의 지혜
중국, 중국인의 지혜 437다시보는 중국 역사 (89) 일본의 중국침략과 태평양 전쟁의 개시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1.04.07  11:40:02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일본 제국주의는 1910년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이후 그 야욕을 멈추지 않고 중국으로 확대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산업화에 성공을 했고 유럽의 제국주의와 같이 아시아에서도 자신의 제국인 대동아 공영권을 형성하려고 시도했다. 

일본은 한반도와 중국의 국경선을 따라 자신의 세력을 확대하고 1931년 9월 18일을 기점으로 만주사변을 일으켜 중국에 대해 본격적인 침략을 시작했다. 이 계획을 단행하기 위해 1928년에 만주군벌이던 장작림을 기차 폭파 사건을 가장하여 제거하였고 만주 침략의 발판을 만들었다. 또한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킨 다음해인 1932년 3월 1일에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푸이를 만주국의 황제로 만들었고 1933년에는 몽골의 일부를 독립시켜 자신의 괴뢰 정부를 세웠다. 

일본의 중국 침략에 대해 당시 장개석의 국민정부는 큰 저항을 하지 않고 공산당 토벌에 전념하다가 장학량의 쿠데타로 2차 국공합작을 하였다. 2차 국공합작 이후 1937년 7월 이후 장개석은 일본과의 본격적인 전쟁을 개시하였으나 군사력이 워낙 차이가 나서 거의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소련은 국공합작이 이루어지자 중국과 소련간 상호불침범의 조약을 맺고 중국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장개석도 자신의 정예군 30만명을 투입하여 상하이를 사수하였으나 함락되었고 일본은 국민당의 수도인 남경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1937년 12월 일본은 남경을 함락시키고 약 30만명의 무고한 남경 시민들을 학살하는 남경대학살 사건을 일으켰다.

중국의 남경에는 남경대학살 기념관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당시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쟁이 가져오는 인간성 상실의 최악의 역사가 그 기념관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일본에게 수도인 남경을 점령당한 국민당은 임시 수도로 중국의 내륙에 위치한 중경으로 이전하였고 이때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도 국민당을 따라 백범 김구 선생과 일행이 중경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백범 선생이 중경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일본은 이후 소련의 극동지역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자신들의 세력을 남쪽으로 확장하기로 결정하였다. 일본은 당시 군사적으로 중요했던 석유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인도차이나 반도와 필리핀 등에 눈독을 들였고 하이난, 타이완, 베트남의 하이퐁 등에 자신의 군사기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일본의 남쪽으로의 진출로 미국과 프랑스 등과의 갈등이 촉발되었다. 미국, 영국, 호주를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일본에 대한 석유와 천연자원의 공급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80%의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 연합군이 자신을 포위한다고 생각하고 미국과의 전쟁과 동남아 지역을 점령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일본은 미국에 대해 선제 공격을 감행하고 협상을 이끌어내는 단기전략을 계획했다. 왜냐하면 영국과 유럽 국가들이 독일과의 전쟁에 발목이 잡혀있고 미국 또한 쉽사리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시간으로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선전포고도 없이 하와이에 있는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기습적으로 공습했다. 같은 날 미국의 점령지였던 필리핀과 괌을 공격하고 홍콩, 태국, 말라야 등을 공격하여 동남아 일대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시도했다. 

일본의 기습공격으로 미국의 태평양 함대는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8대의 미국 군함이 파괴되었고 188대의 전투기가 파괴되었다. 동시에 약 2500명의 미국인이 사망했다. 일본군은 진주만에 대한 기습 공격에 미국이 놀라 일본의 아시아에서의 지배권을 인정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일본의 예상과는 달리 미국은 강경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미국은 일본의 기습 공격 이전에는 유럽의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미국 우선주의의 원칙을 고집했다. 그러나 이 진주만 사건으로 미국은 입장을 선회하여 본격적인 참전을 결정하였고 태평양 전쟁이 개시되었다. 

<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평안신문 선정‘ 2022 평택·안성 ’10대 뉴스
2
평택·안성, 강남 직행좌석버스 노선 신설된다!
3
2023년 알아두면 좋은 바뀌는 제도 Ⅰ
4
정장선 평택시장
5
지방정치를 좀먹는 정당정치
6
임인년(壬寅年), 한 해를 마무리하며
7
안성시, 여소야대 시의회와 첨예한 대립
8
계묘년(癸卯年), 높게 도약하는 한해가 되길
9
수원지검 평택지청·법무부청소년범죄예방위원회, ‘청소년 범죄예방 한마음 대회 및 예술 발표회’진행
10
평택항, “항만경쟁력 지켰다”
신문사소개윤리강령편집규약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경기도 평택시 비전5로 35, 501호(비전동) (주)평안신문  |  대표전화 : 031-692-5577  |  팩스 : 031-692-5579  |  대표메일 : panews@hanmail.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경기 다 00922  |  발행인 : 심순봉  |   청소년보호책임자 지정 : 이성관
Copyright © 2011 평안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pa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