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개나리들이 얼굴을 단장하고 길가에 도열 해 있는데 이제야 알아챈 내가 더 낯선 아침 안동에 기거하는 아들집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고속도로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수줍은 꽃들은 고개를 든 듯 숙인 듯 어설픈 자세로 우리를 바라보고 서있다. 저 멀리 숨어서 핀 진달래 꽃 몇 송이는 아직 배웅의 준비가 덜 된 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성질 급한 자두 꽃이 핀 집 울타리엔 푸른 기색이 역력하고, 버들가지에 매달린 연두색들은 봄이 왔음을 광고하듯 현란한 색조가 제법이다. 산수유 노란 볼이 다소 쇠 한 듯 엉거주춤한 틈을 타서 이른 벚꽃이 하나 둘씩 고개를 내밀고 있다. 어느덧 마을 어귀에는 거름을 내고 있는 농기계소리가 언성을 높이며 우릴 반긴다.

경운기가 흘려놓은 가축분뇨 거름 사이를 잘 골라 디디며 도착하니 아들은 밭에 나가 감자를 심고 있었다. 부지런히 파종을 마치고 우리를 마중하여 점심을 함께하려 계획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상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반 정도밖에 작업을 못한 채 서두르고 있었다. 모두는 팔을 걷고 밭으로 달려들었다.

비닐 멀칭에 구멍을 뚫고 지나가면 나는 싹을 골라 분할해 놓은 씨감자를 넣었고 뒤따라 덮고 누르고 밟고 하며 서둘러 감자 파종을 마쳤다.

이제 약 60여 일이 지나 하지 즈음에 감자가 주렁주렁 달릴 상상으로 땀을 닦으며 가까운 식당을 찾아 맛있는 점심을 마치고 인근 꽃 찻집에 들러 꽃구경과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아주 오래전 부모님들이 감자를 심을 때엔 그저 구경만 했던 아련한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감자를 심어 본 기억은 이번이 처음 이었다. 씨감자를 골라 어느 정도 싹을 틔운 뒤에 이것을 그냥 심는 것이 아니라 4등분으로 갈라서 감자한 덩이가 네 포기의 감자줄기로 자라도록 심는 것 이다. 

그리고 그 감자 한 포기에서 또 다른 감자 수십 알이 잉태되는 것이다. 우리 또한 그렇게 생겨난 한 알의 감자 같은 소생 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의 부모님들이 그러했듯이 몸이 부서지고 갈라지는 인고의 고통으로 우리를 키워주신 것조차 아주 아득히 잊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오늘 몸을 갈라 씨가 되는 모성의 감자를 심으면서 많은 상념에 잠겨본다.

나를 잉태하신 부모님과 내가 잉태하여 소생한 자식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 이지만 세월이 가면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감자뿌리 알맹이처럼 번성해 나가는 순리 이면에는 누군가의 할반과 분신의 희생이 반드시 있었다는 것을 조금 이라도 되새기며 살아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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