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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의 지혜 435다시보는 중국 역사 (87) 중국의 붉은 별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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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24  11:5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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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붉은 별은 타임즈지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책 100권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 책의 저자는 에드가 스노우란 사람으로 1927년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지방 신문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28년 상하이로 건너와 차이나 위클리의 부편집장을 역임했다. 또한 북경대학에서 강의도 하였고 미국과 영국의 잡지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1932년 중국에서 웨일즈라는 여성과 결혼을 하였고 마오쩌둥의 대장정을 취재하면서 유명해졌다. 미국인 기자로는 최초로 당시 중국 공산당의 근거지였던 연안에 들어가 마오쩌둥과 회견하고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당시 중국 공산당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중국의 붉은 별은 중국공산당이 장개석의 국민당군에 패배하여 도주하면서도 게릴라전으로 그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것과 그 과정에서 마오쩌둥의 지도력, 그리고 공산당군의 현실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마오쩌둥은 이 책이 바로 자신의 일대기와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마오쩌둥은 장개석의 공산당 토벌 작전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는데 그 과정을 대장정이라고 한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1928년 형식적이지만 전체 중국을 통일하였고 국제사회에서 유일한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로 인정받았다. 이후 타이완으로 쫓겨났으나 미국의 힘을 배후에 업고 1971년까지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장개석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도 여전히 열강의 일본의 침략이 계속되었으나 그는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이후 중국 국민당의 중국 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은 공산당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공산당을 토벌하기 위한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했다. 장개석은 1930년부터 공산당 토벌 작전에 들어갔다. 

장개석은 초기에는 공산당의 홍군을 우습게 여기고 수만의 병사를 파병하여 진압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홍군의 매복과 유격전에 걸려 패배하였다. 이에 화가 난 그는 더 많은 병력을 파병하여 공격하였다. 그러나 1931년 일본이 만주 사변을 일으키고 만주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을 감행하자 두 번째 토벌을 중지하였다. 

이어서 세 번째와 네 번째의 공격도 수포로 돌아가자 장개석은 1933년 독일의 참모총장을 고문으로 초빙하여 토치카 전을 이용하여 조금씩 공산당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공격해왔다. 공산당은 1년을 버텼으나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장개석의 군대를 피해 도주를 계획했다. 

드디어 1934년 10월 약 10만명이 중국 공산당군은 자신의 근거지를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망을 가면서도 ‘북상항일’이라고 하면서 여론 몰이를 하였다. 도망가는 동안 쭌이라는 곳에 도착했는데 여기서 공산당 내부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자신들의 패배의 원인을 소련 공산당의 잘못된 지도와 이를 받드는 주류 공산당 지도부의 책임이라고 결론 내리고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새로운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편성되었다. 

중국의 붉은 별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권력을 잡은 마오쩌둥은 자신의 특기인 게릴라전을 중심으로 ‘적이 공격하면, 도망간다. 적이 멈추면, 적을 괴롭힌다. 적이 피곤하면, 공격한다. 적이 도망가면, 쫓아서 공격한다 (敵打我退, 敵駐我擾, 敵疲我打, 敵退我追)라는 16자 전술을 구사했다. 

이 전술을 통해 마오쩌둥의 공산당군은 약 370일간 그리고 12,500킬로미터의 긴 거리를 걸어서 연안(延安)이란 곳까지 도망갔다. 이 과정에 장개석의 군대는 비행기와 탱크 그리고 약 70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공산당을 섬멸하지 못했고 공산당은 10만명에서 8천명만이 남았지만 살아남았다. 

마오쩌둥의 공산당군은 혹독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아 훗날 전체 중국을 통일하는 기초를 만들었고 마오쩌둥을 중국의 붉은 별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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