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마태복음 16:23). 이 무서운 질책은 예수님께서 ‘수제자’(首弟子) 베드로에게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게 되며 부활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16:21).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다윗왕시대의 영화를 회복하고 평화의 왕국을 세울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죽게 된다면 그 모든 기대는 물거품이 될 것이기에, 베드로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16:22).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그야말로 큰 걸림돌이었다. 

그러면 정작 예수님에게 이 십자가는 쉬운 길이었을까? 아니다. 예수님에게도 큰 걸림돌이었다. 십자가의 길을 막아선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신 이유이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이 무엇인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그것은 극심한 육체적인 고통이었다. 당시 로마인들은 ‘십자가’라는 말을 입 밖에 내는 것을 매우 무례하게 여겼다. 너무나 잔인한 형벌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거짓 고소로 죄를 뒤집어씌운 것과 함께 갖은 인간적인 모욕과 조롱, 침 뱉음 등 정신적인 고통을 받아야 했다. 

더 심각한 것은 영적인 고통이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부 하나님과 그동안 가졌던 친밀한 관계가 십자가를 지는 순간에는 모두 부정당하였다.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죄를 뒤집어쓰고 죄인이 받아야 할 모든 저주와 진노를 한 몸에 받아야 할 십자가는 예수님으로서도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당하며 내뱉은 말 중 하나는 이것이었다.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태복음 27:46).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마태복음 26:38)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체포당하기 직전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마지막 처절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 십자가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였다(26:39).

그 기도의 간절함에 대하여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누가복음 22:44)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시고 십자가의 길로 담대히 나가셨다. 그 길만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걸림돌이었던 이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것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생명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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