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가사 내용만 들어도 멜로디가 연상되는 유명한 유행가사이다.  

동그라미 속에 보이는 세상의 형상이나 사람의 모습 등은 참으로 여러 형태로 보일 수 있다.

아마도 이 노랫말을 쓴 사람은 사람의 얼굴을 떠 올리면서 이 가사를 지었을 것이다. 보고 싶었거나 생각하고 싶었던 얼굴의 형태를 음미하듯 노래하고 있다.

빛나던 눈동자나 오똑한 콧날, 오목한 보조개나 도톰한 입술, 둥글고 아늑한 얼굴의 윤곽을 눈을 감고 연상 하듯 엮어가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요즘 흐릿한 구름 속에 보일 듯 말 듯 한 둥근 해를 그려 보고픈 마음이 불연 듯 들어 높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지그시 눈을 감아 본 적이 있다.    

노랫말처럼 아련한 추억들이 서린 맑은 해를 연상 해 보기도 하다가, 구름에 반쯤 가린 수줍은 해를 연상 해 보기도 하고, 검은 눈썹에 긴 코를 붙인 눈사람 같은 해를 떠 올려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내 윤곽이 잡히지 않고 멀리서부터 날아드는 냄새에 촉각이 기울어짐을 느꼈다.

긴 겨울을 난 묵은 고춧대와 잡초더미가 타고 있는 불내였다.

그런 가 했더니 그윽한 시골 향수를 연상케 하는 곰삭은 퇴비냄새가 뒤를 이었고, 여기 저기 농사를 준비하는 부지런한 농부들의 걸음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하면서 때 이른 경운기 소리에 앞서 지난해 미쳐 걷어내지 못한 농사용 비닐들이 대지에서 걷혀 지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바로 이 것 때문 이었구나! 봄!

해를 그리려던 상상을 산란하게 만든 것은 바로 봄이 오는 냄새 때문에 집중하지 못했던 우매한 아집이 원인 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또다시 눈을 감고 봄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 했다. 낮에 보았던 입을 반쯤 벌린 산수유 꽃 몽우리가 말해주던 예언이 적중하듯 맞아 들어가고 있었다.   

노란 개나리의 웃음과 빨간 진달래의 꿈자리가 숭숭 한 것도 봄 때문 이었고, 흰 털옷을 벗어 걸친 여인의 자태 같은 버들강아지의 수려한 외모 또한 봄 때문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었다.  그리려다 놓쳐버린 봄의 얼굴이었다. 구태여 상상하지 않아도 눈 코 귀를 때리는 봄 냄새에 취해 아득했던 상상들이 벗겨지고 있다. 검은 비닐을 걷어내는 농부의 콧노래소리와 함께 드러나고 밭이랑처럼 상기된 봄의 얼굴이 그려지고 있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