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냉이를 주고 갔다. 나물을 좋아하는 언니가 생각났다며 건넨 검은 비닐에 담긴 냉이 무게가 20킬로는 되어 보인다. 잎보다 뿌리가 엄청 길고 굵은 것이 도라지나 인삼뿌리를 연상하게 한다. 

흔히 먹는 참냉이는 재배가 가능하여 쉽게 먹을 수 있고 다른 냉이들은 초봄에 잠깐 만날 수 있다. 진짜 식용인 냉이인가 의심스러워 물으니 황새냉이라고 한다. 황새다리처럼 긴 뿌리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얼었다 녹은 진흙 밭에 자유롭게 자란 냉이라 삽으로 땅을 뒤집어 캐어 진흙을 잔뜩 품은 흙을 털어낼 여유가 없어 급하게 담아왔다고 한다. 큰 다라이에 쏟으면서 나의 냉이 씻기 도전기는 시작된다. 두 시간여를 씻어내도 작은 흙이 약올리듯 나온다. 뽀얗게 드러난 긴 다리와 잎의 밑동 폭폭 박힌 흙과 나물의 밀착이 신비롭고 눈물겹다. 찬물에 얼얼해진 손으로 흙이 빠져나간 냉이를 들어보니 미인이 따로 없다. 1센티 조금 넘는 잎의 황새냉이 황금비율에 우주의 기운이 들어오는 기분이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친 냉이를 찬물에 헹궈 소분해 두었다가 첫 요리로 냉이전과 냉이초무침을 만들었다. 청양고추를 듬뿍 넣어 들기름으로 부친 냉이전의 고소함은 고생한 자의 몫이지만 나누어 먹었다. 효소 엑기스에 각종 양념을 개어 무친 빨간 냉이다리에 화룡정점 통깨를 뿌리면 빨간 구두 아가씨가 되는 건 아니지만 새콤달콤 기막힌 맛이다.

봄나물 중 냉이는 식탁의 신사라 불린다. 대지를 뚫고 나온 작은 식물이 대견하다. 그 대견한 것이 냉이만은 아니지만 된장을 연하게 풀어 국을 끓여도 좋고, 어떤 요리를 해도 건강한 이 나물은 면역력 강화, 지혈 효과, 춘곤증 예방, 숙취 해소, 눈 건강에 특출한 효능이 있다고 하니 냉장고 안에 보약이 가득한 느낌이다.

헤르만 헤세는 <봄의 말>이란 시에서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두려워하지 마라!”고 노래한다. 

어느새 기우는 시간으로 가고 있는, 그가 말한 “봄이 소곤거리는 것”을 알아듣는 나이가 되었다. 순간을 푸르름 놓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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