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람으로>를 쓴 이상훈은 그의 책에서 폐암으로 40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골집에서 요양 중인 동생을 찾아갔다. 동생에게 지금 제일 힘든 게 뭐냐고 물었다. 긴 침묵 이후 동생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 외로워” 형은 동생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24시간 곁에서 보살피는 가족이 있고, 또 그를 아는 수많은 사람이 간절히 기도하며 그를 응원하고 있음에도 외롭다니.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저자는 그러한 외로움이 죽음 앞에 서 있는 인간이 갖게 되는 솔직한 심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언제나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지만, 사는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혼자서 가야 하는 사람은 외롭다. 주위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홀로 그 길을 가야 하며 함께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사느라고 바쁘지만, 어느 순간 죽음의 그림자를 느낄 때 그 엄숙함의 무게는 누구나 감당하기 버겁다. 

병원의 종합 검진을 기피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있다. 경제적인 이유나 번거로움, 그리고 검사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검진 항목에 따라 수치스러움도 있다. 그런데 종합 검진을 꺼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검사결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별생각 없이 검진했는데 혹시 그 결과가 암 말기라든지 중병에 걸려 시한부 판정이 내려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안감이다. 아주 건강하게 지내던 사람이 허망하게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일을 주변에서 종종 보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인생을 자랑 말라고 했던가.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이사야 2:22). 

죽음 앞에서 인간은 절대 고독을 느낀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탄식이나, 바로 앞을 장담하기 어려운 위기 속에서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라고 한 다윗의 말(사무엘상 20:3)에서, 사니까 사는 거지 정작 죽음 앞에 한없이 무력한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다윗은 임종을 앞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기면서,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열왕기상 2:2). 누군가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우리가 언젠가는 그 장례식의 주인공이 될 때가 올 것이다. 그것은 정해진 이치임에도 우리는 그날이 절대 오지 않을 것처럼 잊고 살아간다. 미리 죽음을 예감하며 삶을 비관적으로 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삶의 끝이 어디인지를 종종 묵상하는 일은 현재의 삶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사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결국, 언젠가 죽음 앞에 섰을 때 우리는 그 절대 고독에 직면할 것이다. 연약한 인간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다만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는 성경의 권면은 이것이다.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베드로전서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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