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아침부터 밤까지 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렸다.

겨울동안 메마른 땅은 하늘에서 오는 생기를 가득 받는다. 봄은 또 희망일까? 

봄이란 글자는 어쩔 수 없이 돋아나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끊임없이 지치지도 않고 반복한다.

글자라는 언어라는 발음을 되내어 생각하면 묘한 힘이 있다. 비, 봄, 봄풀, 보다, 나무, 동쪽, 서쪽, 하늘, 땅, 띄워쓰기, 붙이기, 물음표, 느낌표란 이름들을 그 누가 지었을까? 그 글자는 글자에 걸맞게 운동을 한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땅에 숨은 자연의 이치를 발견하여 소리글자 뜻글자를 만들어 문명을 개척해 왔다. 동서남북은 동서남북 글자대로 제 위치에서 할 일을 믿음직하게 담당하고 있다.

다음백과에서 ‘한글’을 검색하면 이렇게 정의한다. “어느 한 시기에 창제되어 일시에 반포 사용되고, 이후 약 600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사용되는 문자는 세계에서 오직 한글밖에 없다.” 이로써 나는 언어를 더욱 윤기나게 갈고 닦아 사랑할 것 같다.

빗자루를 들고 베란다 물청소로 추위와 허기에 덮힌 먼지를 씻어낸다. 내친김에 장롱 속에 흐트러진 옷가지들을 꺼내 다시 개고, 입지 않거나 낡은 것을 미련없이 버렸다. 책장엔 아끼는 책만 남겼다. 오래전에 즐겨 읽었건만 지금은 읽지 않는 책, 오래된 노트를 박스에 담아 내다 버렸다. 나는 시원한 봄맞이를 하는 중이다. 

세계가 겪는 코로나 사태, 아프고 고달파 답답함을 뒤로 하고 오늘은 삼월을 친구로 삼는다. 나는 다시 봄이 되어 ‘동쪽으로 얼굴을 들어’ 고운 해를 맞는다. 

  돌 사이에 풀 한 포기 억지로 빠져나와

  해를 보려고 동쪽으로 고개를 드는데 

  동생들이 호미로 쪼아가면 그 풀뿌리는

  또 억지로 나오느라고 

  얼마나 외로이 얼마나 애를 먹을까? 

                            - 이용구의 시 <봄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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