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싸늘하고 바람이 부는 날엔 따뜻한 라면 국물이 제격이다. 얼큰하고 구수함에 길들여진 우리입맛에 잘 어울려서 일까?  아니면 뱃속 깊숙이 스며드는 온기가 매력적 이어서 그럴까? 둘 다일 것 같기도 하다.

나 역시도 과음을 하거나 한 다음날엔 종종 얼큰한 라면국물이 생각나기도 한다. 유년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구수한 소고기 라면의 국물은 무수한 세월이 흘렀어도 잊혀 지지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요리를 할 줄 모르는 나도 간간히 라면을 끓이는 기술은 조금 가지고 있었나 보다. 적당한 국물의 양을 선택하는 기술과 끓는 시간의 길이에 따라 쫄깃함의 유지되는 정점을 안다.

코로나 여파로 손자 손녀들이 등교를  못하고 집에서 원격 수업을 하게 되면서 직장을 가진 엄마 아빠들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리하여 지난 한달 여 동안 손녀딸들이 할머니 집에 기거하게 되면서 기이한 일이 생겼다.

아내는 요리를 잘 하기로 가족과 이웃 간에 정평이 나 있다. 

물론 아이들도 당연히 할머니의 반찬에 매력을 느끼며 좋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연 듯 생각난 라면이 그리워지면서 가장 요리 실력이 없는 내가 끓여 보기로 하고 나름대로 익혀 두었던 숨은 실력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드디어 식탁위에 놓여 진 라면그릇에 서로의 양 만큼을 덜어 먹기 시작 했다. 맛있게들 먹고 난 후 손녀딸이 말했다. 할아버지의 라면이 왜 이렇게 맛있지? 요리는 할머니가 잘 하는데 참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아마도 내 입맛과 같은 짭쪼름 하고 쫄깃함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터에 모처럼 제 입맛을 찾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는 며칠에 한 번씩 할아버지의 라면을 주문했고 난 기꺼이 실력발휘를 했다.

이번에도 역시 딱 맞는 식감에 아이들은 즐거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서로가 흐뭇한 표정들을 지으며 라면성찬을 종종 즐기곤 했다.

이제 새 학기를 앞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손녀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소중했던 순간들이 라면 국물처럼 그윽하게 느껴 옴을 알았다.

다음에 또 오게 되면 꼭 내가 손수 끓여주는 할아버지 라면이 먹고 싶단다.   

각박하고 험난한 역병의 난국에서도 하찮은 라면 국물이 가져다 준 소소한 행복의 순간들이 벌써부터 아련하게 그리워진다.

오래도록 할아버지의 라면을 기억해주는 선한 마음들을 간직한 채 씩씩하게 성장 했으면 참 좋겠다.  조리 실력이 줄어들지 않도록 오늘저녁에도 구수한 라면을 보글보글 끓여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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