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갑에게 돈을 빌려 주면서 차용증 대신 약속어음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갑의 변제자력이 못미더웠던 병은 갑에게 다른 사람의 배서를 받아 오라고 하였고, 갑은 을로부터 약속어음의 뒷면에 기명날인을 받아 왔습니다. 이후 약속어음의 만기일로부터 한 달이 지나도록 갑이 돈을 갚지 아니하여 병은 하는 수없이 을에게 변제를 청구하였습니다. 그러나 을은 병이 만기일에 약속어음의 지급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돈을 갚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병이 을에게 돈을 받을 수는 없나요?

 

<해설> 을이 차용증서에 갈음하여 약속어음이 발행된 사실을 알고서도 보증을 하여 주었다면 병은 을에게 보증인으로서의 책임을 물을 수도 있습니다.

약속어음의 배서인에게 어음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어음소지인이 약속어음의 지급제시기간(보통 어음의 만기일에 이은 2거래일까지입니다) 내에 적법하게 약속어음을 지급제시하였어야 합니다(어음법 제43조). 적법하게 지급제시되지 않았다면 어음소지인은 약속어음의 배서인에게 어음금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병은 을에게 어음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약속어음의 실질적인 의미가 차용증에 갈음하여 작성된 경우 대주(貸主라)가 제3자의 배서를 요구하는 것은 통상 보증인을 세우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배서를 하여 준 사람 역시 보증의 의사로써 배서한 것이라면 배서인에게는 당연히 어음금 채무 이외에 민사상 보증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지만, 단순히 신용을 제공하여 사채시장에서 쉽게 할인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배서한 것이라면 민사상 보증인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어떠한 경우에 배서인이 보증의 의사로 배서를 한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에 관하여 우리 대법원은 “어음이 차용증서에 갈음하여 발행된 것이며, 배서인이 그러한 사정을 알고서 채무자의 요구에 응하여 배서를 한 것이라면 배서인은 채무자의 차용금채무를 보증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의미에서 배서를 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93다23459 판결). 결국 우리 대법원은 어음이 차용증서에 갈음하여 발행된 사정을 알고 채무자의 요구에 응하여 배서를 하여 준 배서인은 보증의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 사례의 경우 을 역시 이러한 사정을 알았다면 보증인으로서의 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병은 을에게 약속어음금의 지급을 청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대여금 채무 1,000만원에 대한 민사상 보증책임을 물을 수는 있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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