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아프리카 르완다 등에서 구호와 개발 사업에 헌신해 오고 있는 이상훈 선교사의 <사람을 사람으로>라는 책에는 르완다 내전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994년 르완다 일대에서 종족간 내전이 일어났다. 당시 후투족은 투치족을 완전히 멸종시키겠다는 정치인들과 언론의 선동에 호도되어 소위 ‘인종 청소’를 시도한다. 투치족을 향한 후투족의 무차별 학살로 100만 명에 가까운 인명이 희생되었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로 <호텔 르완다>가 있다. 

책에는 그때 학살에 참여한 후투족 가해자들 중 하나인 타데오와, 투치족 피해자들 중 한 사람인 사라비아나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라비아나는 처녀의 몸으로 같은 마을의 후투족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윤간을 당하고 온몸을 칼에 찔린 채 풀숲에 버려졌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죽지 않고 목숨을 건진다. 내전이 종식된 후 타데오는 학살범으로 재판을 받고 징역형을 살았다. 석방되어 고향에 돌아온 그는 피해자 중 하나인 사라비아나를 위해 집을 지어 선물하고 용서를 구한다. 르완다에서 집은 최고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사라비아나는 지금도 입을 제대로 다물지 못할 정도의 흉터로 일그러진 얼굴에 몇 개의 손가락이 절단된 상태이다. 그러나 사라비아나는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긴 타데오를 용서한다. 그렇게 가혹한 일을 당한 사람이 어떻게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었을까? 

책의 저자인 이상훈 선교사는 사라비아나에게 물었다. 죽음으로 내몰리던 그날의 공포와 아픔을 생각하면 가해자들에게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느냐고. 그녀는 상처로 다물어지지 않는 입에서 바람이 새어나가는 소리를 내면서도 차분하고 나직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그날의 기억이 찾아오는데, 그것은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그런 상황 자체에 대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 나오는 슬픔입니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죄가 있기도 했지만, 어쩌면 이 여인에게는 인간의 잔학성에 대한 깊은 연민과 슬픔이 용서가 가능하도록 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전쟁과 테러, 학살은 인간의 본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다. 독일의 여성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독일의 유대인 학살의 주범 중 하나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에 대하여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한다. 전범 재판의 과정을 참관한 아렌트는 학살의 주범들이 이상한 성격 파탄자이거나 정신이상자가 아니라, 너무나 멀쩡하고 평범한 사람이었음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특별히 더 악독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도 그런 자리와 환경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누구나 본성상 죄인이며, 마음 깊은 곳 악함이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어찌 보면 교도소에 있는 사람과 교도소 밖에 있는 사람의 차이는, 누구의 말처럼, ‘들킨 죄인’과 ‘안 들킨 죄인’의 차이일 수도 있다. 기독교신앙은 인간이 참으로 가망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누가복음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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