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달 초순에 들어 있는 ‘소한(小寒)’을 기해서 폭설과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가 몰아닥쳐 코로나와 함께 고통을 가중 당하고 있다. 이번 한파는 20년 만에 오는 한파라는 기상청 발표다. 

지난 6일 밤에 전국적으로 내린 눈은 지역에 따라 강설량의 차이는 있지만 특히 서울에 내린 눈은 미처 제설을 못한 관계로 아침 출근길에 차량들이 싸인 눈길에 속수무책으로 이리저리 미끄러져 접촉 사고를 내는 도심 출근길의 대 혼란의 모습을 TV 뉴스를 통해 생생하게 보았다. 그리고 전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비닐하우스에 재배하고 있는 소중한 작물들이 얼어 축 늘어져 소생할 수 없게 된 안타까운 모습, 양어장의 동결로 양식어들이 죽고 양계장의 닭들도 동사했다 한다. 또한 한강과 낙동강 그리고 서해안의 일부 지역 바닷가 해수도 결빙되는 근래 없었던 대 한파의 피해와 고통 속에 이 겨울을 맞고 있다.

이런 강추위에도 다행한 것은 일상생활의 거처인 각 가정이나 직장 사무실이나 여러 실내 작업장 그리고 버스나 열차 내에도 난방이 잘 되어 있어서 추위에 잘 견뎌 내며 일상생활을 잘 유지 할 수 있는 점이다. 그리고 겨울철 사람들의 의상만 보아도 여러 형태의 보온용 패딩 의류와 모직코트, 털 부츠 등이 사람들의 활동에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해 줄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아마 70~ 80 그 이상의 세대들은 지난날 그분들이 살아왔던 겨울철의 실상을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당시는 해방 직후, 6.25 전후한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 소득이 100달러도 채 안 되던 시절, 국민들의 삶이란 세계 최하위 급의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용할 양식으로부터 의류, 주거 환경 등 지금의 아프리카나 동북아시아 난민의 삶이나 다를 바 없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로부터 구호 식량과 의류, 약품, 학용품 등 소위 구제품의 지원을 받을 정도였다. 

학교에 가면 겨울철인데도 깨진 유리창도 즉시 보수도 못한 채 찬바람이 교실 안을 몰아쳤고 난로는 연료가 없어서 등교할 때 집에서 장작 몇 개비씩을 들고 가야 했다. 그나마 한 두 시간 때면 더 이상은 나무가 없어 때지도 못한 채 추위에 떨며 수업을 해야 했다. 그 후에 조개탄을 보급했는데 그나마 쏘시개는 등교할 때 학급 전원이 솔방울을 주어 가지고 가야 했다. 그래 봐야 조개탄도 한 두 시간 때면 그만이었다. 각 가정의 난방도 구들장 방에 아궁이에서 나무나 볏짚, 가랑잎 해다 때야 했다. 이런 연료 시대 다음으로 연탄이 보급되어 연탄아궁이로 바뀌었고 근래에 와서는 온수 보일러로 항상 온기가 유지되는 편리한 난방이 된 것이다. 올 같은 겨울 추위를 그 시절에는 거의 매년 견뎌야 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GNP) 3만 불 시대에 이르렀고 GDP(국가총생산량)는 IMF(국제통화기금) 발표 세계 10위 순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해 있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수준도 높아진 것이다. 예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 향상 발전만을 향해 달려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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