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한해의 긴 다리를 슬그머니 건넜다. 참으로 지루하고 두렵기도 한 다리를 건넌 기분이다. 통복천 공원길을 걷다보면 하천 이쪽저쪽을 넘나드는 돌다리가 몇 곳이 있다. 

어느 해 여름! 비를 피하려 부지런히 건너다가 실수를 하여 한쪽 다리가 물에 빠져 낭패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조금만 서두르지 않고 차분했더라면 그런 실수는 없었을 것을 하며 돌이켜 보면서 실수란 늘 지난 후에나 느끼게 되는 것인가 하는 추상을 해 본 적이 있어 그 이후에는 아주 조심조심 건너다닌다. 워낙에 단단한 돌다리라서 두드려 볼 필요조차 없는 견고한 다리 이지만 예상 밖의 일은 항상 불시에 다가오게 마련이란 교훈을 얻었던 기억 이다.

지난 해 여름에는 원주 근교의 소금산 출렁다리를 건너갔다 다시 건너 올 때 아득한 절벽의 계곡을 내려다보며 스릴 보다는 막연한 가정 같은 걱정을 한 적이 있다. 안전하고 스릴 만점의 여행 이었지만 요즘 들어 다시 회상해 보니 아찔함이 되새겨 지기도 한다.

어느 출렁다리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살아가면서 현실적 다리보다도 더 두렵고 길고 무서운 다리들이 너무 많다. 그중의 하나는 한해를 넘기는 세월의 다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한해의 다리를 건넌다는 부푼 기대에 두려운 것조차 망각하고 넘고 보니 엄청난 변화의 다리를 건넜구나! 할 때가 요즘 이다. 특히나 창궐하는 우환의 근심을 덜고 건넜어야 할 지난해의 다리가 개운치 못한 것도 사실이다.

건너온 다리보다 건너가야 할 다리가 더 길고 두렵기도 한 시절이다. 그러나 다리의 개념이란 넘으라고 있는 것 아니던가! 즐기며 넘든, 억지로 넘든, 떠밀려 넘든, 어쨌든 넘어야 그 소명을 다함이 아니던가. 이왕에 넘을 우리 앞의 다리라면 용감하게 넘어야겠다는 각오로 한해를 맞고 싶다. 

한쪽사람이 먼저 건너가면 맞은편 사람이 건너던 양보의 외나무다리처럼 건너보자. 좁은 다리 중간쯤에서 맞닥뜨린 이웃을 슬그머니 안고 돌아 위기를 피해 가듯 지혜를 무기삼아 넘어보자.

긴 출렁다리를 감상하며 건너가고 건너오듯 여러 상념들이 교차 하더라도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여유로움을 과시하듯 근심 걱정은 아득한 계곡 아래로 던져두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유쾌하게 넘어보자. 가끔은 상대를 위해 내 쪽의 출렁다리를 흔들어 웃음을 주기도 하며, 점점 뒤로 멀어져가는 마주치던 사람들도 다리 끝에 다다라면 나처럼 다시 돌아오리란 걸 잊지 말자. 아찔하지만 담담한 마음으로 새로운 한해의 출렁다리를 소처럼 느리게 즐기며 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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