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전이 배상제회를 세우고 세상을 태평하게 만들겠다고 혁명을 일으켜 남경을 수도로 삼아 태평천국을 건설했다. 태평이란 말을 찾아보면 나라가 안정되고 평안하다는 뜻도 있지만 앞일에 대해 걱정없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뜻이 나란히 존재한다. 

 
혁명의 초기에 토지제도의 개혁을 통해 민심을 획득했고 또한 여성들에 대한 형벌과 같은 전족을 철폐하여 고통에서 해방시켰다. 동시에 만주족인 청나라 타도를 외치면서 머리를 변발에서 장발로 변화하였다.불행하게도 태평천국의 이러한 개혁적 노선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홍수전을 천왕으로 하여 다섯명의 왕을 두고 있었다. 동왕, 서왕, 남왕, 북왕과 익왕으로 자신들의 측근을 임명하였고 각기 독립적인 지지기반을 두도록 하였다. 이중 동왕인 양수청이 초기에 많은 활약을 하여 배상제회의 세력을 확대했는데 이후 서왕 소조귀와 남왕 풍운산이 전사하게 되자 양수청의 세력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다. 양수청은 재상을 겸임하면서 점차 홍수전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했고 홍수전의 명을 받아 위창위가 양수청을 기습 공격하여 살해했다.
 
이번에는 양수청을 살해한 위창휘가 다른 세력이었던 석달개가 맡고 있던 익왕부를 습격하였고 석달개는 간신히 피신할 수 있었다. 이어서 위창휘는 이제 홍수전을 핍박하였고 홍수전은 이간계를 사용하여 그를 체포하여 처형하였다. 이들간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속에 처음의 혁명의 기치는 오간데 없이 사라졌고 오로지 권력욕에 눈이 먼 이리떼처럼 타락해갔다. 
 
다시 돌아온 석달개는 홍수전이 무능한 자신의 친인척으로 조정을 채우게 되자 10만명의 병력을 데리고 사천쪽으로 이동하여 자신의 근거지로 만들려고 하였으나 이미 사기가 꺽인 군대는 오합지졸이 되어 청나라의 관병에게 전멸당하였고 동시에 홍수전의 본거지도 쇠락을 맞이하게 되었다. 
 
한편, 홍수전과 그의 일파들의 독재가 심해지자 당시 그들의 지배를 받거나 침략을 받던 곳의 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자위집단을 만들고 군대를 조직하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증국번이란 사람인데, 호남성을 중심으로 군을 조직하였고 그 군대의 이름을 상군(湘軍)이라고 하였다. 또한 이를 참고하여 이홍장이란 사람도 회군을 만들었다. 
 
증국번과 이홍장은 비록 한족이었으나 태평천국의 유교를 거부하는 교리나 정책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자신의 지역을 지키기 위해 독자적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태평천국에 저항하였다. 이들이 강한 저항과 태평천국 자체의 문제로 더 이상 그들의 세력을 확대할 수 없었다. 
 
이러한 내우외환에 빠진 태평천국의 지도부는 여전히 정신을 못차리고 내부의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었다. 홍수전의 동생이었던 홍인간이 왕으로 책봉되었으나 당시 대부분의 태평천국을 주도했던 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태평천국의 중앙과 지방간에 서로 연결이 되지 않고 각자가 독립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그 세력이 약화 될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중국에 들어와 있던 열강들도 초기에는 배상제회가 기독교 집단이라고 믿고 호의적이었으나 태평천국은 공산주의적 태도와 반 열강의 구호와 정책을 실시하자 입장을 선회하였다. 특히 영국의 경우 자신의 세력범위 내에 태평천국이 들어오자 청나라를 도와 이들을 진압하기로 결정했다. 
 
열강들은 중국인을 모집하여 신식무기로 무장한 상승군(常勝軍)과 상첩군(常捷軍)을 조직하였고 영국군과 프랑스군도 태평천국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이후 태평천국은 점차 세력을 잃어 남경이 함락되기 일보직전이었다. 홍수전은 죽기 전에 자신이 천국에 가서 천국의 병사를 데리고 오겠다고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유언은 실현되지 못했고 증국번의 상군에 의해 남경이 함락되면서 태평천국은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태평천국은 우리에게 세상을 구한다고 뛰어들어 혁명을 성공했어도 그 마음이 변하면 민심도 변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권력을 쫓는 위정자들이 항상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