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야곱은 평생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그는 말년에 자신의 삶을 ‘나그네 길의 세월’이었으며 ‘험악한 세월’이었다고 요약한다(창세기 47:9). 그는 속임수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꼼수를 써서 형의 축복을 가로챘고 아버지를 속여 형이 받아야 될 영적 축복도 대신 받았다. 그러나 그렇게 약삭빨랐던 그는 후에 자신의 장인의 속임수에 놀아나 오랜 시간 억울한 노동을 감당해야 했다. 결국 그는 자수성가하여 고향 땅에 돌아오지만, 고향 땅에 정착하려면 자기에게 깊은 원한을 가진 형과 대면을 해야만 했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형에게 많은 고가의 선물을 앞서 보냈지만, 형이 전해온 소식은 군사 400명을 이끌고 자신을 만나러 오겠다는 것이었다(창세기 32:6). 군사를 대동하고 오겠다는 것은 오랜 원한을 갚아주겠다는 말과 같았다. 벼르고 벼른 복수를 이제야 하려는 것 같았다. 야곱은 큰 해를 당할 위험에 놓였음을 감지한다. 야곱은 전전긍긍하다가 모든 가족과 재산을 먼저 얍복강 건너로 떠나보낸 후에 자기 홀로 얍복강 나루에 남게 되었다(창세기 32: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홀로 남겨진 시간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홀로이므로 누구를 의식하거나 가장할 필요가 없이 날 것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 시간은 가장 나 다울 수 있는 시간이다. 야곱은 큰 위기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가난해졌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실존의 위기가 ‘단독자’(單獨者)로서 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했다. 야곱은 홀로 남아서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다. 야곱은 인간적인 온갖 모략으로 성공하려고 애를 썼지만 하나님이 한번 불어버리시면 다 송두리째 무너짐을 하나님의 대리자인 천사와의 씨름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속임수 인생이 다 발가벗겨졌고, 위기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자신을 발견했다. 성경은 말한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호세아 12:3-4). 
 
때때로 하나님은 아무도 없는 황량한 광야, 홀로 남겨지는 빈 들판으로 인생을 부르신다. 그 적막한 시간에 마음이 내면에 깊은 곳에 머물 때 그를 만나주신다. 성경은 홀로 남겨진 시간인 마음의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태복음 6:6).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란 결국 사람들과의 거리두기요, 단절을 의미한다. 강제적으로 각자 홀로 남겨진 셈이다. 친한 가족 친구들조차 마음 놓고 만나기 쉽지 않은 형국이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도 많이 생겼다. 자칫 사회적 거리두기를 고립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홀로인 시간들을 자신만의 마음의 골방에 들어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보면 어떨까? 상황은 어렵지만, 그동안 소홀했던 자신의 내면을 건강하게 세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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