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무실 창문 밖 나무들은 어느새 잎을 다 떨구고 나신(裸身)의 모습으로 서있다. “아~ 이제 겨울채비를 하였구나!” 단풍든 잎을 보기보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더 가깝다. 지난 주엔 군 복무 중인 아들로부터 철원에 첫눈이 왔다는 소식도 들었다. 아직 평택에서는 눈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주에 부쩍 추워진 영하의 아침은 겨울이 우리 앞에 다가왔음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새벽길에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해 본다. 낮이면 기온이 더 오를지, 아니면 쌀쌀함이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때마다 계절에 걸맞은 차림을 부지런히 준비해왔다. 처음에는 새로운 계절에 대한 설렘과 함께 약간의 낯설음과 귀찮음이 적당히 섞인 채로 계절을 맞는다. 그리고 점차 그 나름 계절의 정취에 곧 익숙해지고 적응한다. 그러다가 그 계절과도 작별을 고한다.
 
우리 인생의 만남과 헤어짐도 이러할까?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 익숙해졌던 것들과의 결별이 우리 인생사에도 늘 있다. 조병화 시인이 그의 시 <공존의 이유>에서 헤어짐이 잦은 우리들의 세대이므로 깊이 사랑하지 않도록 하자고 했던 것은 만남의 즐거움보다는 헤어짐의 아쉬움이 크고 깊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그저 가벼운 눈웃음을 나눌 정도로 지내는 관계라면 헤어진다고 해도 그리 아쉬울 이유도 없을 것이고, 언제 다시 만나건 아니면 못 만나건 그리 상관할 바가 아닌 것이다. 이 시대에 유행하는 “쿨 하게 만나고 쿨 하게 헤어진다.”는 개념에는 관계에 너무 집착하고 서로에게 부담이 되게는 하지 말자는 동기와 더불어, 상처받지 않으려는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인 동기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해본다. 잠시 스치는 관계라고 생각했었는데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기록이 되고 흔적이 되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언젠가는 익숙했던 것과 작별을 해야 여러 상황들에 우리는 직면한다. 지난(至難)하기만 했던 올해와도 작별의 날이 가까워 오고 있다. 또 누군가는 익숙했던 환경을 뒤로 하고 헤어짐과 만남의 새로운 전환점에 서있기도 할 것이다. 떠나보내야 할 입장에 있기도 하고, 때로는 떠나야 할 입장에 있기도 하다. 어떻든 헤어짐은 아쉬움이다. 결별에 대한 아픔과 함께, 익숙함의 부재(不在)가 주는 낯설음에 대한 두려움도 묻어있다. 
 
해마다 새로운 계절과 만나고 또 헤어지면서 나이가 들어가고, 그 세월의 무게를 감당해내며 우리는 살아간다. 그러는 동안 여러 사람들과 관련을 맺고 다양한 환경 속에서 지낸다. 점차 연말은 가까워 오고 부쩍 추워지는 지금, 더욱 마음 따뜻한 관계들이 그리워진다. 마지막 잎사귀도 떨어뜨릴 이 추운 계절에 우리를 둘러싼 것들이 나름의 소중한 가치를 지녔음을 새삼 생각해본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아쉬워하기보다, 있을 때 그 자리와 만남을 소중히 간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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