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과 같이 만리장성을 넘어 파죽지세로 명나라를 공격하여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이룩했던 청나라도 강희제와 옹정제 그리고 건륭제라는 세명의 황제를 지나 조금씩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위기는 가장 번성했을 때부터 시작된다고 하듯이 가장 성했던 시기를 지나자 내부의 모순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청나라의 만주족은 마치 자신이 오랫동안 중원의 주인이었던 착각에 빠져 그 경계심이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외부 세계의 변화에 대해 전혀 눈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중국이 정체된 발전을 지속하고 있는 동안 저멀리 서쪽의 유럽에서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스페인과 네델란드 그리고 포르투칼 등의 국가에서는 절대왕정의 절정기를 맞이했고 부국강병과 왕권의 강화를 위해 해양세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바르돌로뮤 디아스와 바스코다 가마는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하였고 인도에 첫발을 내디디며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중국의 당나라 시기에 이미 이들과의 교류가 있었으나 중동지역에 이슬람교가 융성하기 시작하여 기독교와 이슬람이 대립하면서 유럽과 중국 사이에 커다란 장벽이 생겨 교류가 끊어져 유럽과 중국은 서로 낯선 대륙이 되어 있었다. 
 
스페인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여 남미의 토착문화를 몰살시켰고 그 사이 영국은 세력을 키워 스페인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또한 ‘달걀 세우기’ 일화로 유명했던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하였고 마젤란 세계일주를 하였다. 
 
청나라가 자신을 천하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안주하는 동안 유럽은 해양을 중심으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재편하는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점차 그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스페인과 같은 단순한 약탈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유럽은 산업혁명이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 인력이 아닌 증기기관을 사용하여 기계를 통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은 세계사적으로 자본주의를 확대 재생산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대량생산은 이전의 자급자족의 사회에서 공급과 수요에 있어서 공급이 넘쳐나게 하였고 그 판로를 개척하기 위해 영국은 약탈이 아닌 식민지를 자신의 시장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자본주의, 해상세력의 확장 등의 변화에도 중국은 여전히 농경사회에서 천하의 중심이 중국이며 사방은 오랑캐로 변화나 혁신,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해양을 누가 장악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영국은 이미 인도에 자신의 세력을 진출시켜 동인도 회사를 만들고 인도양과 태평양을 지나 자신의 제품을 판매하는 교두보로 삼고 있었다. 이들은 중국을 방문하여 자신들과의 무역을 할 것을 요구했다. 
 
청나라는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의 무역의 요구를 자신들의 세계관 즉 단순한 조공정도로만 간주했다. 그래서 중국의 남쪽에 있는 광저우를 개방해주고 여기를 통해서만 중국과 무역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유럽에서는 중국과의 거래를 국제무역으로 인식했으나 중국은 말 그대로 야만족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이와 관련한 상거래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영국 등은 중국의 엄청난 시장이 자신에게 가져올 거대한 이권을 상상하였으니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 특히 영국과의 거래에서 자급자족에 익숙해있던 중국은 영국 제품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영국과 유럽은 중국의 차(tea)와 도자기에 열광하고 있었다. 이 번성의 속에 예기치 않은 위험이 중국 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중국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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