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지쳐 쓰러져가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미물에 조롱당하듯 시름하는 우리를 본다. 낙엽이 사람을 평 하는 것 인지 사람이 낙엽을 숭배 하는 것 인지 몽롱한 착각 속 자연의 현실 속에서 어수선한 가을 앞에 선다. 붉거나 갈색 이거나 누렇거나 얼룩이거나 색깔이 불분명한 낙엽의 정체들을 진맥하려 한다.

 
여느 때 그 모습이 아닌 창백한 면면이 낯설기도 하고, 긴 여름 장고의 시름을 덜지 못하였는지 시름 가득한 너를 보고 있자니 내 얼굴이 먼저 파리해 짐은 무엇인지가 또한 난해해지는 가을 밤. 초저녁부터 채근하던 상상은 색깔을 잃은 듯 흐리멍텅한 자태로 선몽을 기획한다. 
 
제발 오늘밤은 너로 인해 숙면이 지속되길 축원 해 본다. 긴 장마와 더위의 부스럼이 점철된 너와 나의 어제를 잘 안다. 인고의 푸르름이 가져다 줄 갈색 추념을 꿈꾸던 너의 희망은 험상궂은 천둥과 번개의 삿대질로 움츠러들었고, 숨고르기를 실패한 해녀의 잠수처럼 자주 표면을 향해 달음질하던 짧은 일상들이 긴 장마에 침수 당하고 호흡에 엇박자가 일면서 가을의 유전자를 잠식당했음이 분명 하다. 그러나 분명한 너의 정체는 낙엽이잖아?   
 
차디 찬 대지를 등에 지고 너의 자태를 최대치로 펼쳐놓을 여름의 유전자를 잃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함으로 난 오늘도 오롯한 낙엽의 열병식을 기다리고 있다. 24절기의 구령으로 한로와 상강을 필두로 제식훈련에 돌입한지 닷새가 지난 오늘도 속옷조차 갖춰 입지 못한 너의 자태 앞에 탄식 한다. 부디 온전한 가을의 패션을 갖춰 입고 장렬하게 누워라!
 
낙엽이 가는 길을 따라 바람이 걸어가듯 나 이 가을을 천천히 걸어보며 너처럼 지난여름을 회상 하련다. 혹 궂었거나 개였거나 개의치 않고, 혹 젖었거나 말랐거나 구애치 않고, 길거나 짧았거나 관념치 않고 초연한 모습으로 너의 옆이든 앞이든 위아래를 사정없이 밟으며 회상의 길을 걸어 보련다.
 
그리고 난 후 어느 날 해맑은 아침부터는 언젠가 자연의 낙엽으로 쓸림 당할 때를 위하여 오롯한 세월을 역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싶다.
저 낙엽들 한 때 왕성했던 날들을 기억 하는데 나 오늘 이 낙엽 쓸어 모을 자격 있는지 바람에게 물어가며 가야겠다. 세파와 풍파에 물들어간 긴 시간들이 피멍처럼 얼룩진 여름의 장마와 태양의 열기를 품고 몰아쉬던 열풍에 끌리며 쓸림 당하고도 오늘 장렬히 웃고 있는 그들의 주름 앞에 빗자루를 멈추고 가을바람의 가닥을 정리하듯 내일을 정리하고 싶어진다.
오늘은 엉성한 가을 색 낙엽 이었지만 내년은 우아한 부스럭거림이 충만한 가벼운 낙엽이 되리란 간절한 기도를 뿌려대며 바람에 편승한 어수선한 이 가을을 부스럭 거리듯 걷고 있다.  굽지도 눕지도 서지도 않은 어정쩡한 가을오후 몇몇 낙엽을 골라 밟으며 퇴근을 챙기는 구두위로 몇 장의 낯선 단풍잎이 화살표를 그리며 앞장서는 데 이정표와 잎정표가 엇갈려 걸음이 더뎌 지고 있다. 아직도 가을이 진하게 익어가지지 않고 있다. 
나 덜 익은 낙엽 같은 오늘을 걸으며 내년의 풍성한 낙엽의 성시를 기대하며 덜 익은 가을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다. 진갈색 낙엽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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