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1월. 늦가을이다. 새벽에는 두터운 외투가 어울리지만 그래도 한 낮엔 따스한 기운이 남아있다.

무르익어 터질 듯한 홍시처럼 가을은 막바지에 와있다. 주변은 온통 짙은 가을 색이다. 나무들은 보란 듯이 다양한 색깔로 물들어 있다. 지난 주일 차를 운전해 지나간 지산동 아파트주변 이면도로에서 완연한 가을 풍경의 맛을 보았다. “이 동네사람들은 가을 단풍 보러 굳이 딴 데 안가도 되겠네”하는 생각이 들만큼, 햇빛에 빛나는 단풍은 아름다웠다. 형형색색의 물감을 뿌린 듯 그림 같은 풍경이 바로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가을걷이를 끝낸 고즈넉한 빈 들판의 휴식. 긴 시간에 걸친 수고로움을 마치고 이제는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미세먼지가 걷힌 날 하늘은 파랗다. 그 하늘을 보며 의외라는 생각이 든 것은 왜일까? 어린 시절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맑고 파란 가을 하늘은 이제 당연하지 않다. 내일은 없을지 모르는 그 하늘을 오늘 만끽하고 싶다. 
 
물리 과학적으로만 보자면 그저 무미건조하게 표현될 수 있는 자연 현상들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의 눈을 거치면 감동과 탄성이 나온다. 해마다 맞이하는 계절이요 풍경인데 우리에겐 그때마다 새롭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가을편지’의 가사처럼 가을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 무엇이 있다. 이제 이런 가을도 서서히 막을 내린다. 가을의 끝자락에 와있음이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곳곳에 서리는 내리고 늦가을이 아닌 초겨울을 예감한다. 이제 곱게 물든 단풍은 떨어져 낙엽이 되고, 추수를 마친 들판에는 하얀 서리로 뒤덮일 것이다. ‘겨울채비’를 해야 될 것 같다.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디모데후서 4장 21절). 노쇠한 사도 바울이 로마의 어느 지하 감옥에서 아들처럼 여겼던 제자 디모데를 그리워하며 편지로 부르는 소리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차가운 겨울이 이르기 전 내가 해야 할 채비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인생의 시린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채비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아니 이미 시린 겨울을 맞이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부쩍 추워진 새벽날씨에 몸이 움츠러들면서 스친 생각들이다. 따스한 온기가 점점 그리워질 겨울을 앞두고, 그리고 이젠 정말 얼마 남지 않은 한해의 끝자락에 서서히 다가서면서 우리 인생의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더 깊이 성찰하게 된다. 
 
절대자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그리고 가족과 또 가까운 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 더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싶다. 시린 바람에 두터운 외투에서 위로를 찾듯, 인생의 시린 바람이 불 때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줄 관계들이 더 깊어지고 두터워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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