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낮의 노동과 밤의 불면으로 글쓰기는 도무지 실마리 끝을 잡기가 어수선하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매는 하나는 순간 속 기록이다. 손과 뇌가 살아 예민하게 움직이며 사물과 조응한다.

 
가방 속에 넣은 책을 꺼내 읽는다. 생명의 끈으로 동행하는 고마운 책에는 가뭄 끝에 비를 맞는 기쁨이 있다.
 
법정 스님의 글은 살아서 세상을 어루만지고 나를 다독인다. 나와 타인에게 친절하라고 두 개가 아닌 하나만 가지라한다. 불멸의 편지로 빛나는 글이 살아서 내 옆에 바로 여기 있다.  
 
“고뇌를 뚫고 환희의 세계로 지향한 베토벤의 음성을 빌리지 않더라도, 나는 인간의 선의지(善意志) 이것밖에는 인간의 우월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온갖 모순과 갈등과 증오와 살육으로 뒤범벅이 된 이 어두운 인간의 촌락에 오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은 오로지 그 선의지 때문이 아니겠는가”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군데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 별나라”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님을,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와 따뜻한 손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다시 출가 사문이 되어 금생에 못다 한 일들을 하고 싶은 것이다” 
 
“숫자가 늘어나면 으스대고, 줄어들면 마구 화를 낸다. 말하자면 자기 목숨의 심지가 얼마쯤 남았는지는 무관심하면서, 눈에 보이는 숫자에만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다”
  
불일암, 나무의자, 평소 법정께서 거닐던 마당 모퉁이에 양귀비꽃 씨를 심고 싶은 깊어가는 가을아침이다.핸드폰 안의 세상뉴스는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세상살이에 고통을 냅다 안겨다 준다. 뉴스 클릭하기를 ‘이제 그만!‘ 세상에는 ’선의지‘와 음악과 아름다운 동화책이 있다는 것을 그만 잊을 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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