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가 금나라와 전쟁을 할 때 악비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그는 효심이 지극하여 홀어머니를 잘모셨는데 그 어머니는 개인보다는 국가의 명운이 중요하다고 아들에게 가르치고 악비의 등에 진충보국(盡忠保國)이라는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그러나 악비는 간신의 모함에 빠져 결국 감옥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고 송나라는 국력이 쇠약해졌다. 

 
명나라 말기에도 원숭환이란 장군이 있었다. 당시 만주족의 영웅이며 한번도 싸움에서 패한적이 없던 누르하치가 딱 한번 원숭환에게 패배하였다. 그 전투 이후 얼마되지 않아 누르하치는 만리장성을 넘지 못하고 죽었다.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황타이지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다시 산하이관(만리장성의 가장 동쪽)을 공격하였으나 역시 원숭환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원숭환은 원래 문관이었으나 전략에 뛰어난 인물로 당시 만주족들이 없던 대포를 이용하여 이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명나라 최후의 명장이었던 원숭환도 환관들의 농락에 의해 역적으로 몰리게 되고 당시 북경 사람들도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조정의 부름에 의심없이 북경에 간 그를 체포하여 역적으로 능지처참형을 내렸다. 능지란 사람의 살점을 하나씩 도려내어 죽이는 극악한 사형방법이었는데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원숭환 이후에는 그 어떤 장군도 만주족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비록 몇 년간은 명나라가 원숭환이 만들어 놓은 방어체계로 버틸 수 있었으나 그 사이에 농민반란에 의해 멸망해버렸고 이때 명나라의 장군들은 명나라를 버리고 청나라에 투항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악비나 원숭환과 같이 자신을 던져가며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려다 오히려 간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국가나 국민의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부귀영화에만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명나라 말기의 오삼계와 상가희, 경중명이란 장군들이었다. 국방의 책임자가 오히려 적에게 빌붙은 꼴이었다. 오삼계는 산하이관을 지키면서 명나라에 이자성의 난이 발생하자 처음에는 이자성쪽에 붙으려고 하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만리장성을 만주족에게 열어주고 자신은 부귀영화를 택했다. 이때 그와 같이 동조한 자들이 있었으니 상가희와 경중명이란 자들이다. 특히 오삼계는 명나라가 멸망한 후 세워진 남명의 영력제가 미얀마로 피신하자 끝까지 쫓아가 살해하는 행위도 서슴치 않았다.  
 
오삼계와 상가희, 경중명 등은 자신의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오삼계는 운남성을 지배하는 평서왕으로 봉해졌고, 상가희는 광동성을 중심으로 하는 평남왕으로 봉해졌다. 그리고 경중명의 아들 경계무는 복건성 지역의 정남왕이 되었다. 이 세 지역을 ‘삼번’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하사받은 땅의 재정, 사법, 군사에 있어 독립적인 지역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청나라가 이제 중원을 차지하고 안정이 되면서 삼번이 오히려 부담이 되자 청나라 조정은 이들을 정리하려고 하였다.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강희제는 평남왕 상가희가 자신은 물러나고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하자 이 ‘번’을 없애려고 하였다. 
 
오삼계도 거짓으로 강희제에게 자신이 물러나겠다고 하자 만류하지 않자 나머지 평남왕과 정남왕, 즉 삼번을 합쳐 청나라에 대항하였다. 청나라는 다시 이들을 이간질 시켜 오삼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청나라에 항복해버렸다. 오삼계만 청나라에 저항하다가 죽고 아들이 그 뒤를 이었으나 금방 진압되고 말았다.청나라는 죽은 오삼계는 부관참시, 그리고 경중명의 아들 경정충은 능지처참, 상가희의 아들 상가신은 자살을 하도록 하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충신과 간신, 역적은 존재하게 되며 현재에는 마치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 같으나 결국 간신과 역적은 자손의 대에 이르기까지 화가 미치는 것이 섭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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