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문턱인데 아내는 테라스에 앉아  고들빼기나물을 다듬고 있다.

 
봄나물의 대명사인 씀바귀와 비슷한 나물이지만 지금도 텃밭어귀에 올라온 고들빼기를 정성껏 키우다가 가끔씩 캐내어 새콤 달콤 쌉쌀한 나물로 선 보이거나 장아찌를 담아 식탁에 올린다.
 
고들빼기는 씀바귀와 달리 잎 끝이 뾰족하고 뿌리가 단단하며 굵다. 따라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다듬는 작업이 매우 힘이 들고 어렵다. 마치 손톱을 깍듯이 정성들여 뿌리를 긁고 손질을 해야 비로소 우리가 식탁에서 맞이하는 맛깔난 음식이 되는 것 이다.
 
또한 잎에서 나온 뽀얀 진액은 쓰고 끈적이며 손에 묻으면 검게 물들어 잘 지지 않는다. 맛은 씁쓸하지만 갖은양념과 어우러지면 특유의 입맛을 돋우는 진귀한 나물이다. 
 
그러므로 거의 생약에 가까운 효능을 지닌 고들빼기를 씀바귀와 더불어 생약 명으로는 고초(苦草)라 부른다. 그런데 이 고초가 달콤하리만큼 입맛을 돋우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손질이 어려워 다듬기가 난해하여도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인내와 고통을 감내하며 씻고 삶고 절이고 무치고 각종 양념을 가미하여 숙성시키고 하는 과정에서의 지극한 정성이 가미돼서 일 것이라 생각 한다.
 
쓴 맛을 달콤 새콤 매콤 짭조름하게 만드는 기술은 아내만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기술이다. 아마도 맛있게 변신해 있을 것을 상상하면 불연 듯 때 아닌 군침이 돈다.  
 
적당히 쓴 맛을 어느 정도만 감추고 특유의 쓴 맛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더욱 감탄하면서 깊은 맛을 음미한다.
 
생각 없이 집어 들던 고들빼기나물이 단순한 양념과 쓴맛만이 아닌 정성의 맛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자니 초겨울 문턱이 훈훈해짐을 느낀다. 요즘 세상이 온통 쓴맛이다.
 
사람들의 아비규환이 씁쓸하고, 서로의 불평과 불신이 씁쓸하고, 세월의 입맛도 쓰고, 공기마저도 매섭게 싸늘해지면서 마음의 한곳도 씁쓸한 가을의 끝자락에 서 있다.
 
추수가 한창인 들녘의 정서가 태풍의 상처로 멍들어 풍년가가 잠들었고, 오곡백과가 긴 장마의 몸살로 인하여 상처투성이로 가을맞이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고 있다.
 
허수아비마저 사라진 가을 들녘은 누운 벼들의 신음으로 차가운 밤을 지새우고 있다. 쓰디 쓴 고들빼기를 갖은 양념으로 요리하는 아내의 손길 같은 훈풍이 간절한 시기이다.
 
힘들지만 정성껏 고들빼기의 뿌리를 다듬고 있는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고 토닥이는  그런 시절이면 참 좋겠다. 쓴 맛은 남아도 감칠맛이 모두를 감싸주는 고들빼기나물 같은 가을 이었으면 참 좋겠다.
 
이 시절을 살짝 절이고 양념하여 따뜻한 첫눈이 내릴 때쯤 꺼내어 먹으면 혀끝에 감도는 감칠맛처럼 알싸한 가을 이었으면 참 좋겠다.
 
지금부터라도 코로나 열풍이 가라앉고 씁쓸했던 지난날들을 감싸고 어루만지면서 온 가족이 둘러앉은 밥상으로 한자리에 모여 고들빼기나물을 풍미 하면서 희희낙락하는 시간을 상상해 본다. 오늘 저녁은 우선 버무려 놓은 고들빼기나물로 아내의 손맛을 예찬해 보련다. 선 듯 다가올 겨울초입에는 고들빼기 장아찌로 훈훈한 저녁한때를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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