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의 변혁이 가져다준 인류문명의 현주소가 도로 명 주소로 변해버린 현실처럼 번지수를 잃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역의 특색을 살린 도로 명을 부여하여 예전과 지금의 주소에 이질감이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지역의 역사나 특색과는 전혀 관계가 먼 동서로 남북로 등과  같은 다소 허무맹랑하기도 한 도로명의 정체는 상당히 허탈한 부분도 없지 않다.
 
이렇듯 우리가 늘 접하고 동고동락했던 시계의 변혁은 마치 낯선 도로 명 주소처럼 타인의 고향 같은 느낌을 주는 현실이 됐다.
 
침침한 흑 바람벽에 고고히 매달려 새벽을 지키며 울어대던 괘종시계는 여명을 따라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앞집 괘종시계소리가 울타리를 넘어 우리 집 안방 머리맡에 다다를 때쯤이면 뒤 곁 닭장의 닭들이 먼저 새벽을 알리던 시절이 있었다. 참으로 값비싼 귀중품 이었고 소장하고픈 보물 1호 였을 손목시계는 유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귀족 서열 이었다.
 
쌀 한가마니 가격보다 다소 웃도는 가격을 주어야 평범한 손목시계를 살 수 있었던 중학교 시절 학교친구들이 하나 둘씩 손목시계를 차고 등교하기 시작 했다. 당시에 손목시계를 요구하기엔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농촌의 경제적 현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터이기에 마음속으로만 상상할 뿐 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허름한 중고 손목시계라도 사주실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한참을 생각 하셨다.
 
당장에 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현실적으로 그럴 수 없는 상황과, 이왕이면 새것으로 사줘야지 중고는 안 된다고 다짐하시는 표정과, 터무니없는 나의 요구에 바로 거절을 해야 할까에 대하여 고민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 하면서 답은 뻔히 안 된다 일 것을 지레 짐작하고 아버지의 표정에 주목 했다.  그리고는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어려운 답을 내려 주셨다.
 
“이번 시험에 1등을 하면 사 줄게” 였다. 평소 아버지는 공부를 꼭 1등을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상위권에 들어야 한다거나 등 집착이 전혀 없이 중간만 가면 된다는 신념을 심어 주시던 분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1등 카드를 꺼낸 것은 분명 사주지 않기 위한 아버지의 생각 일거라 믿으며 굳게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시험일정이 다가 왔다. 어떻게든 1등을 해보려는 나의 생각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러나 시험결과는 의외였다. 1등은 놓쳤지만 2등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매우 아쉬운 마음으로 성적표를 내 밀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1등을 못했네” 하시고는 뒷말을 잇지 않으신 채 도장만 찍어 주셨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시장에 다녀오시던 날 나를 불러 앉히시고는 “2등도 1등이나 마찬가지니 1등을 한 것과 다름없다” 하시면서 번쩍거리는 신품 손목시계를 건네 주셨다. 하늘과 땅 모두를 얻은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세월이 흘러 간 지금 그 손목시계도 아버지도 이 세상에 없지만 아버지의 그 소중한 사랑의 마음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금시계 줄처럼 감겨 있다.
 
손목시계가 사라진 요즘 가끔은 용처가 불분명한 손목시계라도 한번쯤 착용한 채 학교주변을 서성이며 지나 간 날 아버지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어진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