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루터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흑인 민권운동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분입니다.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마당에 민권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철지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 -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성시경(성균관대 고시 경기 고)처럼 미국의 주류사회를 비꼬는 말-를 우월한 종자로 생각하는 녀석들이 있는 걸 생각하면 마틴루터킹 목사의 외침은 고루한 것이라 기보다, 오히려 두고두고 새겨야 하는 귀한 교훈이 아닌가 싶습니다.

특별히 그 분이 주도한 운동이 더욱 위대하게 생각되는 것은 비폭력 저항운동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집을 불 태우고 가족들과 동료들을 죽이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말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죽일 수는 있을지언정, 내가 당신들을 미워하 게 만들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마틴루터킹 목사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이 위대한 일이 로사팍스(Rosa Parks)라는 평범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955년 12월 1일, 목요일이었습니다. 로자팍스는 자리를 비키라는 버스기사의 고함소리에 놀라 고개를 듭니다. 당시 알라바마의 몽고메리시 버스에는 네 번째 줄 까지 백인만 앉을 수 있었습니다. 기사의 고함소리에 백인의자에 앉아 있던 몇몇의 흑인들이 슬금슬금 뒷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나서 자리를 옮기는 대신 오랫동안 품고 있던 말로 기사에게 되묻습니다.

“왜 우리가 일어나야 하죠?” 경찰들이 오고, 일어나지 않으면 체포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그녀를 힘으로 끌어내리려고 할 때, 그녀는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던 한 마디 말을 쏟아 놓습니다. “싫습니다, 자리를 옮길 수 없습니다” 그녀의 이 한마디 말은 내뱉어진 순간부터 몽고메리 버스 승차거부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마틴루터킹 목사가 주도하는 비폭력 흑인 민권운동으로 번져가게 됩니다.

로사팍스의 직업은 재봉사였습니다. 그녀는 가난했고 무식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능력으로는 버스승차거부운동을 주도할 수 없고, 더더욱 흑인민권운동 같은 엄청난 사건의 지도자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중요한 사실은 로사팍스가 없었던 들, 마틴루터킹 목사도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볼품없는 한 여인의 삶이 미국 사회 전체에서 흑인의 인권을 세워내는 위대한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정직하게 내뱉은 한마디 용기의 말이 위대한 교훈과 이정표가 되어 세계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당시 그녀는 한 번도 국경을 넘지 못했지만, 몽고메리의 버스 속에서 세상을 향한 엄청나고 위대한 일을 시작했던 것 입니다. 가야 할 길이 많습니다. 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베트남에서 국빈 대접을 받고 계시다는 어느 전직 회장님의 말처럼 “세계는 넓고 해야 할 일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향한 일은 나의 발끝에서 시작됩니다. 지구 땅 끝까지 가서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시작은 앞꿈치요, 마지막은 뒤꿈치입니다. 정치, 종교,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위대한 마틴루터킹 보다 평범한 로사팍스가 더욱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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