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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의 지혜 406다시보는 중국 역사 (61) 조선의 당파싸움이 임진왜란을 만들다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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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2  11: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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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정부가 무능하여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여러 가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나쁜 것은 타국의 침략에 충분히 대비하지 않아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는 생명이고 둘째는 재산이며, 셋째는 명예이다. 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것이 전쟁이다. 

 
위화도 회군을 하여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세월이 지난 후 조선의 조정은 권력을 둘러싼 당파 싸움에 여념이 없었다. 연산군 이후 사화(士禍)로 정적들을 죽이기 일쑤였고 여기에 훈구파와 사림파 간의 갈등이 혼란을 부추기고 있었다. 당시 이이는 한반도가 북쪽으로는 오랑캐와 남쪽으로는 왜구에 둘러싸여 있으니 10만명의 병사를 육성하여 그 위험을 막아야 한다고 수도 없이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무능한 선조와 한줌도 안되는 권력에 눈이 먼 관료들의 싸움에 점차 조선은 벼랑끝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한편 일본은 유럽의 상인들과의 교류를 시작했고 일본내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했다. 그는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가장 밑바닥 인생에서 시작해서 전국시대의 혼란한 일본을 통일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 화장실을 청소하는 등 가장 미천한 일을 맡아서 하였으나 점차 오다의 총애를 받아 세력을 키웠다. 훗날 오다가 죽자 그의 군대를 동원하여 전국을 통일하고 일본 최고의 권력자 자리에 올랐다. 
 
도요토미는 당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많은 장군들이 조선을 공격하는 것에 반대하였으나 고집을 부려 1592년 드디어 조선을 침공하기 시작했다. 이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끝까지 자신의 병력을 보내는 것에 반대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에 일본을 재통일 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얼마 전 도요토미는 대마도주를 시켜 조선에게 통신사를 파견할 것을 요구하였다. 조정에서는 각 당파의 이익에 따라 또 찬반이 나뉘었는데 결국 일본의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여 통신사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1590년 황윤길과 김성일 두 관료를 일본에 파견하였으나 도요토미를 만나지 못하고 답서만을 받아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답서의 내용이 선조에게 바로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한 김성일은 답서를 자신이 직접 고치는 공문서 위조까지 저질렀다. 
 
일본을 방문했던 황윤길은 일본이 많은 군함을 준비하고 있고 도요토미가 보통 인물이 아니니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황윤길은 당시 당파 싸움에서 서인이었는데 같이 갔던 김성일은 동인이었다.김성일은 답서를 고쳤을 뿐만 아니라 도요토미는 감히 조선을 공격할 인물이 못된다고 평가 절하 하였다. 
 
이를 두고 또 당파싸움이 벌어졌는데 무능한 선조는 김성일등 동인의 말을 듣고 성을 쌓고 방어를 준비하던 사업까지 중지시켰다. 심지어는 오억령이란 신하가 당시 유력한 일본인이었던 겐소가 다음해에 일본이 조선을 공격할 것이며 명나라까지 같이 공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선조에게 보고하였으나 그 말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파직을 시켰다. 
 
권력욕에 찌든 당파들과 무능한 임금은 여전히 궁궐안에서 서로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전쟁이 임박할 무렵 왜관에 있던 일본인들이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고 일본인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자 그때서야 일본의 침입 가능성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은 후였다.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에 감사를 파견하여 성벽을 고치고 신립과 이일을 지방으로 급파하여 전쟁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조선 침략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였으며 특히 서양에서 수입한 새로운 무기인 조총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무능한 조정의 한심한 작태에도 당시 전라 좌수사였던 이순신만이 일본의 침략이 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조정은 풍전등화 앞에서도 자신의 뒷배인 명나라가 있다고 생각하고 일본이 감히 대국인 명나라를 등에 업고 있는 조선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란 한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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