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한 바다 한가운데서 배 한 척이 침몰해가고 있었다. 모두 급하게 구명보트에 옮겨 탔는데 한사람이 오지 않아 출발할 수 없었다. 긴박한 상황에서 한 사람 때문에 지체되자 모두가 분노했다. 결국 성난 무리 앞에 나타난 그 사람. 무엇 때문에 이렇게 늦게 왔냐고 비난하는 무리들 앞에 그는 손에 꼭 쥐고 있던 것을 내보였다. 그것은 나침반이었다. “나침반이 없다면 우리는 방향을 잃고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도에 없는 길, 우리 손에 나침반은 있는가?” 얼마 전 코로나 이후의 삶과 기독교 신앙을 주제로 한 세미나의 광고 카피였다. 우리는 정말 지도에도 없었던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미증유’(未曾有)라는 말이 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음’을 뜻한다. 물론 많은 시대에 걸쳐 난리와 전쟁이 있어왔고 대규모의 감염병 사태도 있었다. 이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 세계를 쉽게 왕래하고 이로 말미암아 감염병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경험을 하지는 않았다. 또한 감염병 확산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듯 전 세계에 알려지고, 시시각각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재난의 소식을 들으며 두려워하고 공포심을 갖게 된 것은 예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과연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비단 코로나 바이러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바이러스 변종이 이후에도 인류를 위협할 것이고, 환경적 대재앙이 불어 닥칠 공산이 크다. 올해 우리나라 여름 날씨는 참 이상했다. 이러한 기상이변은 단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인 현상이다. 앞으로는 이것이 일상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상황에 부닥치면 어떻게라도 적응해갈 수밖에 없겠지만 그러면서 겪게 될 혼란함과 공포심은 더욱 커갈 가능성이 많다.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야할 우리에게 과연 나침반은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과연 무엇을 믿고 의지하며 그 길을 걸어갈 것인가? 각자 뭔가 믿고 의지하는 구석이 있을지 모른다. 인류의 지혜와 지성을 믿고, 과학과 의학기술의 진보에 기대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진정되지 않겠냐는 막연한 희망을 갖기도 한다. 기독교 신앙인이라면 이 모든 것을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을 것이다. 어떻든 지금의 현실은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결국 나침반을 생각하다가 문득 그 방향은 인생의 가치관, 혹은 신념과 신앙의 문제로 귀착되었다. 생사(生死)의 문제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문제가 있을까? 살든지 죽든지 간에 나에게 진정한 위로는 무엇일까? 코로나를 피한다고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정신이 없지만, 코로나 말고도 이 세상에는 곤고한 일이 많고 죽을 일이 많이 쌓여있음을 잊지 말일이다. 남들이야 어떻든 지금 나에게는 삶의 나침반이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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