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너무 힘들면 ‘이번 생은 망했어’라며 비우고 내려놓는 가장 가벼운 말로 자기위안을 한다. 말은 말이고 주어진 일에 열심히 사는 건 변함이 없다. 

 
여름비로 세상이 두 번째 난리를 겪는다. 질병과 자연의 과한 강수가 정신을 차릴 찰나를 주지 않는 사이 능소화, 상사화, 배롱나무 분홍꽃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꽃의 아름다움을 쳐다보며 감탄을 할 겨를도 없이 그들은 세상을 지고 가는 것이다.
 
언제 꽃사과 열매가 저리 여물었지, 감나무도 폭우와 거센 바람에 더는 견딜 수 없어 푸르고 어린 감들을 낙과한다. 산다는 게 어수선하고 불안한 저녁 또 찰나를 본다. 이토록 천연스런 하늘이라니. 맑은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작은 자유의 큰 힘을 품게 된다. 
 
평온한 날이 그립다. 마치 영화에서 spoil(망치다)의 반전 요소를 보듯 자각 없던 오만의 깊이에 질병과 물의 세례가 뜨겁다. 두세 살 아기도 마스크를 끼고 어린이집에 간다. 소독약을 바르는 일이 익숙해지고 다른 가족의 방문에도 어린 것은 마스크 착용 유무와 소독약을 확인한다. 학생들은 친구와의 생활은 물론 학습과 시험보다 생존의 거리두기에 우선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꽃잎만 보아도 웃어야 할 소녀들은 마스크 안에 표정을 지우고 정서는 굳어간다.
 
사람도 다른 동식물과 다를 게 없다. 자연환경의 일부라는 자각을 잊지 말아야한다.
 
엄청난 비의 위용에 놀라 지붕 위로 올라간 소와 사성암에 오른 소들을 보며 삶의 의지와 애착은 어떤 대상에게나 존귀한 것임을 깨닫는다. 
 
예산에서 비닐하우스 멜론과 오이농사를 하는 친구의 오이를 샀다. 일조량이 부족해 충분히 자라지 못한 오이에 판매 취소를 했다고 한다. 애가 타들어갔을 텐데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희망’을 선택했다며 심심하게 웃는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그 마음 자연을 원망하지 않고 일어서는 씩씩한 모습을 응원하며 오이소박이김치를 담아 나누어 먹는다. 땅을 사랑하며 땅의 힘으로 키운 내적 근육에 놀라웠다. 
 
이제 우리는 자연을 대하는 생의 철학이 파괴되는 것을 버리고, 감사하고 아끼며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거스르는 일은 우리가 버림받는 지름길이다. 자연이란 텍스트(text) 아름다운 문장을 사랑해야 새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꽃과 나무의 시간과 마주한다. 자연의 역습을 잊지 말자, 격한 분노의 한해를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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