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중국의 무협소설을 쓴 작가중 김용이란 사람이 있다. 그에 대한 평가로 “중국인이 있는 곳에 그의 작품이 있고, 중국인이 모인 곳에서는 그의 작품을 이야기한다”라고 할 만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이다. 그가 쓴 소설이 공식적으로 팔린 것만 1억부 이상이고 실제 복사까지 하면 모든 중국인이 한번쯤은 읽었을 것이다. 또한 중국이나 홍콩, 대만 뿐만 아니라 한국과 동양의 많은 국가에서 그의 소설이 사랑받았다. 

 
김용은 1924년 중국의 절강성에서 태어났고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에 많은 관료들을 배출한 명망가 집안의 출신이다. 중국이 공산당 정권으로 바뀌기전 대만의 장개석이 국민당의 관리들을 배출하기 위해 설립한 중국 국민당 중앙정치학교(지금의 대만 국립정치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개혁주의자였던 그는 국민당의 학생들에 대한 태도에 불만을 품고 항의하다 퇴학을 당했고 태평양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다시 쑤저우 대학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여 상하이의 대공보(大公報)라는 신문사에 입사하였고 졸업후 홍콩지사에 파견되었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외교부에서 일했으나 공산당의 이념과 대외정책이 자신과 맞지 않자 공무원을 그만두고 다시 신문사로 돌아갔다. 
 
신문사에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무협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중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분석하였기 때문에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세 번째 작품이었던 사조영웅전은 송나라가 여진족의 금나라에 쫓겨 항주로 피난을 가서 남송을 세운 역사적 사실과 이후 징기스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송나라를 멸망시키는 기간 까지를 다룬 대하소설이었다. 여기에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중국의 다양한 무술과 문파가 등장했다. 
 
중국의 소림파, 화산파, 무당파, 개방파, 전진파, 아미파 등 수많은 무술의 문파들이 등장하였고 이후 중국의 무술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소림파의 경우 지금도 스님들이 무술을 연마하고 있으며, 소림사에 가보면 그 근처 도시의 곳곳에 무술학교들이 성행하고 있다. 
 
사조영웅전의 인물들을 소개해보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영화 ‘동사서독’의 황약사와 서역의 구양봉, 그리고 거지들의 우두머리로 개방파의 홍칠공, 운남성 대리국의 황제였던 단지홍 등이 구음진경을 둘러싸고 벌이는 ‘화산논검’ 등 수많은 이야기를 남겨놓았다. 
 
김용의 대표적인 소설 3부작이라고 하면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이다. 이 소설들은 한국에서는 영웅문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의천도룡기’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한국에서도 상당한 관객을 동원하였다. 그 내용은 점차 쇠락해가는 몽골의 원나라에 대항하는 한족들의 활약상을 묘사하고 있다. 
 
‘의천도룡기’는 의천검과 도룡도를 손에 넣어 그 힘으로 몽골을 몰아내고 한족의 나라를 다시 세우는 과정을 소설화한 것이다. 여기서 종교가 하나 등장하는데 바로 명교(明敎)이다. 명교는 서역의 마니교와 조로아스터교에서 시작되었고 당나라 측천무후 때 중국으로 전파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장무기는 34대 교주가 되어 원나라를 물리치고 명교의 일원이었던  주원장이 기회를 잡아 명나라를 세운다는 내용이다.  
 
김용의 소설들은 중국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비록 허구이기는 하지만 역사와 인물, 지역들을 상세하게 담고 있어 중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꼭 한번 읽어보기를 희망한다. 또한 소오강호와 동방불패 등 50대 이상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영화들이 모두 김용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그는 청나라를 배경으로 쓴 ‘녹정기’란 소설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고 홍콩의 헤리티지 박물관에 가면 그의 작품 갤러리를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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