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행복한 인간관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절감한다. 최고급 브랜드로 온 몸을 치장하고, 매일 최고급 식당에서 값비싼 음식을 먹으며, 수십억 원이나 한다는 강남의 최고급 아파트에 산다고 한들,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잠시는 즐거울지 몰라도 어두운 밤 홀로 남겨졌을 때의 깊은 고독을 상쇄할 수는 없다. 관계에서 누리는 행복보다 큰 것이 없다. 물론 독신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 또한 다양한 관계로 엮여져 있기 마련이다. 상황이 나빠도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관계를 가진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도서 4:9-10) 

 
물론 함께 있음이 항상 행복한 것만도 아니다. 오히려 고통스러운 관계일 수도 있다.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5:17).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7:1). 화목한 관계는 어려움도 넉넉히 감당하게 한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는 고통이 배가된다. 더구나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미움과 다툼 속에 갈등하며 살고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언 21:9, 25:24). 비록 남성의 입장에서 언급된 것이지만 남편이나 아내나 어느 쪽이든 상대 배우자와 큰 갈등 속에 사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 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 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노사연의 ‘바램’이라는 노래가사 중 일부이다. 그런데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관계가 아무리 좋아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조차 더 이상 다가설 수 없는 각자의 삶의 지점에 맞닥트릴 때가 있다.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건강의 위기이든, 아니면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내면의 깊은 상처와 아픔이든지 간에 말이다.  
 
필자는 몇 해 전 명절 새벽에 갑자기 담낭결석 증세가 나타나 그 고통으로 데굴데굴 구른 적이 있었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가기까지 그 고통의 시간동안 나는 철저히 혼자라는 것을 느꼈다. 주변에서 걱정해주는 가족들조차도 그 순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저 입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하나님 저 좀 살려 주세요, 제발!”이었다. 철저히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임마누엘’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생에게 함께 하겠다고 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창조주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로 하나이신 관계적 하나님이시다. 그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과 인격적으로 만나고자 하신다. 그 만남을 위한 초청이 바로 성경의 핵심 주제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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