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아침에 나와 안성 인지사거리에서 서운산 가는 버스를 시골사람들과 기다린다. 시골버스의 여유와 빈 공간을 맞으며 정오의 햇볕은 뜨겁게 느리게 흘러 정지될 것 같았다. 

 
곧 끝나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시달리며 마스크를 자연스레 쓴 행인들의 모습이 아직도 이상하다.
이 와중에 세상 뉴스는 또 잔인하게 전한다. 여기저기서 계부와 친모가 어린 아이를 학대하고 죽인다고 자꾸 전한다. 아이는 죽음을 각오하고 기꺼이 집에서 탈출했다. ‘부모’ 라는 이름이 지옥이었을 그 아픔이 겹겹이 전해지고 나의 생활도 황폐해질까 절레절레 머리를 흔든다. 
 
청룡사 대웅전은 수리공사 중이었다. 나의 집과 두 아들을 생각하며 잠깐 기도를 올렸다. 햇볕은 사찰의 약수물에도 기와장에도 조용히 내리고 있어 내 마음도 조용해진다. 
 
계곡물은 가물어 쫄쫄 가늘게 흐르고 그 안에 새끼 뱀이 보인다. 꼬불꼬불 긴 길처럼 세상에 나와, 뱀의 이름으로 헤쳐 나가야 할 생명이 얼마나 부대낄까 안쓰러웠다.  평일의 서운산에는 오가는 사람이 없어 내 발자국 소리만 산길에 내렸다.  
 
점심을 먹으러 음식점에 들러니 자그마하게 늙은 여주인이 혼자 앉아 금방 땄다며 매실을 다듬는다.  묵무침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아주머니는 쪼르르 가게에 딸린 밭으로 나가 배추와 상추 오이를 금새 뜯어 와 즉석에서 묵을 무쳐 주셨다. 발효한 막걸리의 시원한 단맛과 함께 묵무침은 일품이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채전과 서운산 높은 줄기가 시원히 둘러쳐 있다.  안성으로 나가는 버스가 출발시간을 기다려 가져온 커피를 주인 아주머니와 나눠 마시고 서운산을 나왔다. 
 
도시로 나가는 버스에서 들려오는 노래 ‘모란 동백’은 가사만으로도 오늘 나에게 작은 위안이 된다. 
 
모란은 벌써 지고 없는데
먼 산에 뻐꾸기 울면
상냥한 얼굴 모란 아가씨
꿈 속에 웃고 오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고요히 고요히
잠든다 해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나를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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