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과수원은 배 열매솎기에 분주하다. 배꽃이 수정되고 꽃이 떨어지면 곧 착과가 되는데 한 꼭지에 10개에서 10개가 넘게 조그마한 열매가 맺힌다. 그 열매들 중에 한 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솎아낸다. 그 마음에 정한 하나를 위해 농부의 손에 선택되지 않은 것들은 가차 없이 땅에 떨어진다. 

 
지난 주말 아침에 과수원 언니로부터 일손이 모자라 배 밭에 나오라는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배낭을 챙겼다. 장갑과 모자와 마스크를 넣고 집을 빠져나왔다. 기다리던 봉고차에 올라 과수원 언니들의 무리에 섞여 농부가 되었다. 
 
오월 아침 창밖의 풍경은 찬란하다. 과원으로 들어가는 좁다란 들길에는 연록의 산빛이며 산철쭉꽃, 포도넝쿨 귀여운 손이 기둥을 기어오른다. 마을의 오동나무꽃, 양귀비, 아카시아 꽃, 이팝나무 가로수와 장미 넝쿨이 빛을 뿜으며 나의 내부에 닿았다. 
 
오늘 일할 이 집 과수원 여주인은 나에게 자신이 쓰던 두건을 주며 배나무 아래서 친절히 하루 일을 일러 주었다.  하나의 열매를 위해 마음에 정하는 기준은, 알맞은 크기일 것, 동글납작하니 반듯할 것, 숫배는 아니 될 것이라고 당부하였다.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라고 옛말에 있지만 고르며 솎는 작업을 하면서 자연이 내는 변함없는 진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나무 주위를 돌며 사다리를 타고 뻗은 가지를 따라 팔을 힘껏 내두르는 일은 긴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렇게 일그러진 것과 숫배들의 낙과를 만진다. 사다리 위에서 문득 눈을 들어 먼 곳을 보면, 야산의 배 밭 위로 비취는 햇살, 그 팔랑팔랑 무수한 잎들이 바람에 반짝이는 광경이 있다. 상호작용하는 호흡과 같아 생명의 힘을 돋우게 한다. 막 울기 시작한 뻐꾸기 소리와 긴 침묵들이 내가 받은 오월의 선물이었다.  
 
남겨진 하나의 작은 열매는 여름의 비바람과 오랜 땡볕을 견디어야 한다. 어느 가을날 서늘함에 순간 단단한 둥근 배가 열린다.  
 
해가 뜨면서 질 때까지 배나무에서 일한 보람으로 돈을 받았다. 일당으로 받은 요 75,000원을 어디에 쓸까? 나를 위해 돈 항아리에 넣을까? 아니면 양주에 사는 8개월짜리 방긋 아기에게 얇은 겉옷을 사서 입힐까?
 
오월엔 어린이가 있고 어버이와 스승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 태어난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저작권자 © 평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