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지키는 유대인의 주요 절기 가운데 ‘욤 키푸르’(Yom Kippur)가 있다. 보통 ‘대 속죄일’로 부른다. 대속죄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 년 동안 지은 죄를 속죄하는 중요한 날이다. 유대인들은 대 속죄일이 되면 회당에서 요나서를 낭독했다. 요나서를 들은 모든 회중들은 “우리는 요나와 같으니이다.”라고 고백 하였다. 

 
왜 유대인들은 요나서를 낭독하고, 우리가 요나와 같다는 고백을 했을까? 북이스라엘 선지자였던 요나는 당시 앗시리아제국의 수도격인 ‘니느웨’라는 대도시에 가서 다가올 심판에 대해 예언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역하고, 니느웨 방향과는 반대 방향에 있던 항구로 가서 때마침 정박해 있던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다. 그러나 그가 탄 배는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고, 그 책임이 요나에게 있음이 드러나 바다에 던져지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적같은 은혜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그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도시의 절망스러운 미래에 대해서 선포했다. 성 사람들은 요나 선지자의 외침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고, 도시 전역에 회개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회개는 철저한 것이어서 성인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과 가축에 이르기까지 금식을 시키며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하심만을 바랐다(요나서 3장). 
 
이러한 그들의 회개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 성에 선포된 재앙을 철회하셨다(요나서 3:10). 성 안은 온통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 극도의 분노와 절망감에 빠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요나 선지자이다. 그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간 것은 행여 그들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까 우려한 것이다(요나서 4장).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요나서 4:1-2) 
 
요나는 죄인이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 동족 이스라엘이 아닌 그 원수들에게까지 흘러가는 것이 싫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요나가 바로 얼마 전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도망치다 풍랑을 만났지만 기적적으로 살게 된 것을 기뻐하며 감사기도를 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의 대적이 그 은혜를 받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자기의 흉악한 죄에 대해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는 것은 그럴 만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아니라는 이기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용서받은 인간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시기할 수 있겠는가? 죽음의 문턱에서 구원받은 그가 어떻게 니느웨 사람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분개할 수 있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는 요나와 같으니이다.”라고 고백한 것은 자신들이 바로 요나와 같이 불순종하며 살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며 살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거역한 요나, 그리고 멸망해야만 할 앗시리아가 회개하였을 때에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서, 자신들이 회개하면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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