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선거관련 인쇄물이 집으로 배달되었다. 운전하다보면 선거운동원들이 여기저기 길가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선거 현수막이 길거리마다 어지럽게 달려있다. 후보들마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지역을 책임지겠다는 야심찬 공약들을 담아 빌딩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매달았다.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일, 그런데 후보와 선거운동원들만의 선거철이 아닌가 싶다. 우선 당장 국민들에게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더 발등의 불처럼 보인다. 짧은 선거운동기간, 그것도 감염병의 우려로 잔뜩 움츠러든 지금, 제대로 후보들을 검증하기 어려운 ‘깜깜이’ 선거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가 잊지 말 것은 코로나보다 투표가 우리 생활에 더 깊숙이, 그리고 더 긴 시간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당장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민의를 대변할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를 등한시할 수 없다.
 
누구를 뽑아야 할까? 사람마다 지지하는 정당, 혹은 선호하는 인물이 다를 것이다. 특별히 어느 당을 지지하지도, 어느 인물이 나은지도 감이 안 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집으로 배달된 선거공약집이라도 꼼꼼히 읽어보고, 후보들의 과거 살아온 삶의 이력들을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과거의 삶이 지금의 후보를 만들었을 테니, 그 사람의 이력이 오늘을 말해주는 단초가 될 수 있다. 과거의 범죄경력이나 성실 납세여부 등도 선택에 도움을 준다. 
 
어차피 어느 후보를 선택하는 것은 최선이 아닌 차선, 혹은 차악의 인물을 선택한다는 마음이 필요하다. 국민들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아 국회의원이 되고서 후에는 당리당략을 위해 돌변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이번 주간은 해마다 기독교회가 예수 십자가 고난을 기억하며 지키는 ‘고난주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이 갖는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기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군림하는 자로서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자처하며 사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신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28).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과거 수많은 통치자들처럼 군사적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존재가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는 정 반대의 길, 십자가의 길로 묵묵히 나가셨다. 자기를 억울하게 죽이려는 자들에게 앙심을 품는 것이 아니라, 한없이 자비한 마음으로 성부 하나님에게 용서를 청했다. 
 
저마다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나서는 정치인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더 낮아지고 섬기고 자신을 비움으로 공동체를 채우는 그런 인물이었으면 참 좋겠다. 국민들을 정치적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믿는 인물로서, 지역을 대변하고 나라를 위해 일할 일꾼으로 뽑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총선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소망해 본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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