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랭이 고개에는 영춘화가 있다.

 
우수 무렵이면 해마다 여섯 잎 노란 꽃이 핀다.
 
앞장서서 봄을 맞이하는 별 모양의 작은 꽃은 옹벽 아래로 꽃가지를 길게 늘어 뜨려 무더기로 피어오른다.
 
오래 전에 이 꽃을 심어 늘어뜨리는 이 집의 주인은 누구일까? 옹벽 위의 집, 아마도 영춘화를 꼭 닮은 사람일거라, 지금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세상에 움츠린 이들의 마음에 생기를 심어주니 말이다.
 
덕동산 아래 나의 집에서 나오면 덕동공원에 튤립 키 큰 싹이 돋아나고 꽃들의 이름표를 보며 걷는다. 재랭이 고갯길 희고 붉은 깃발 집, 이름 짓는 집, 로또 집, 산삼 집, 재랭이 시장, 김밥 집, 중화요리 집, 오래된 은행나무, 성당, 경찰서, 우체국들은 오래된 친구처럼 나의 터전이다. 
 
‘확진자’ 라는 단어가 매일 바이러스처럼 번지는데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움츠리는 것일까?  내 집을 단정히 하여 긴장을 견디는 것, 산책하는 것, 내공을 키우는 것, 그리고 가끔 멍하니 대상을 바라보기도 한다.
 
코로나 전쟁통이라 누구나 나도 모르게 확진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사회적 거리는 ‘확진자’를 사람이 아닌 바이러스로 대하는 위험을 생각해야 한다.
 
은행나무를 지나 우체국 쯤 걸었을 때 부고가 울린다. 
 
어릴적 친구가 이 세상을 훌쩍 떠났단다. 하필이면 재랭이 고개를 함께 오르내리며 말동무 길동무였던 친구이다. 시간이란 말 없는 짐승의 아가리로 목숨은 애틋하게 어이없이 진다.   
 
봄의 우울은, 뜨문뜨문 나무와 나무사이 멈춤과 움직임 사이 전봇대와 전봇대 사이로 영춘과 수선화 개나리꽃이 피는 중이다.   
 
재랭이 고개는 지금 꽃이 코로나를 박차 버리고 밀물떼로 밀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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