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살아 온 인류에 대한 형이 집행되었다. 

 
‘아무렇게나 마구’ 마음대로 자연의 순환을 파괴하고 오염시킨 단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19를 출현시킨 자연의 역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이러스가 지배하는 공포의 시간도 시간이라 조금씩 소멸하는 과정에서 꽃피는 춘삼월이 왔다. 봄이 길목에 와서 살랑살랑 눈짓하던 시간이 소중하고 그립다.
 
계절이 가고 오는 일은 늘 사계란 흐름으로 우리 곁에 머물다 가고 했지만 그 아름다운 이치에 깊은 감사를 표현하는 일은 무디었다.
 
‘새가 울지 않는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올 것이다’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말했다.
또한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이 온다’ 는 법정 스님의 말처럼 몸살을 앓는 사이 영춘화가 말없이 피었다.
 
마스크로 반쯤 가린 얼굴로 걸어가다 두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해 신중해진다. 흙이 있는 곳이면 어리고 여린 풀이 돋아있다. 나무들은 눈의 촉을 세우고 새잎의 시간을 위해 공감력을 집중한다.
 
며칠 사이로 산수유는 꽃망울을 피울 것이다. 새들은 부지런히 먹이를 찾아 바람을 가르며 날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구두 수선방 아저씨는 더 일찍 문을 여는 봄인데 확진자가 다녀간 동네 상가 골목길은 고요하다.
 
언제 이 난황의 일이 회복될지 알 수는 없지만 이번 일을 거울삼아 순리를 거스리며 지배하고 탐욕으로 무너지는 인간사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사는 생명을 함부로 하지 않는 생명 존귀를 실행해야 한다.
 
백 마디 말보다 때로는 시가 그것을 대변해 주는 울림과 역할을 하기도 하여 역동적 세상으로 보폭을 맞추게 하는 시를 놓아 본다.
 
봄은 전쟁처럼
 
산천은 지뢰밭인가 
봄이 밟고 간 땅마다 온통
지뢰의 폭발로 수라장이다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푸르고 붉은
꽃과 풀과 나무의 여린 새싹들. 
전선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지랑이손짓을 
신호로 은폐 중인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
일제히 참호를 뛰쳐나온다.
한 치의 땅,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한 격돌. 
그 무참한 생존을 위하여
봄은 잠깐의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 전쟁의 포문을 연다.
 (오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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